n번째 편지

by 이육공

타인의 글을 첨삭하다가, 문득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자신의 동반자에게 절절한 진심을 적어 내린 편지를 보고 있노라면 많은 이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나는 수신인을 무명에 부친 채 낭만적인 단어를 늘어놓는 수밖에 없다. 무명일지, 익명일지, 부재일지, 부정(不定) 혹은 부정(否定) 일지 읽는 이는 모를 터이다. 심지어 당신은 글쓴이가 수신인을 상정했는지 아닌지도 알 길이 없다. 그러니 수신인은 내가 될 수도, 당신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다정한 편지를 쓰고 싶은데, 심력을 소진하여 다정히 말하기 어렵다. 너는 알지 모르나, 본디 내가 태생부터 다정한 사람은 아니다. 나를 깎아 다정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지. 어찌 보면 강박적 다정이다. 누가 이런 말투로 편지를 쓰나 싶지? 나도 이리 써보는 것은 처음이다. 때로는 그런 편지도 있는 거다. 세상의 모든 글이 사실은 n명의 사람에게 부쳐진 편지임을 감안하면 새삼 특이한 일은 아니다.


너는 요즘 무얼 하며 살아가나? 매일 다정히 안부를 주고받는 누군가가 곁에 있나? 아니면 오늘도 외로움에 사무쳐 삶을 고뇌하나? 나의 요즘은 제법 허망히 소비된다. 마치 시간제 요금을 끊어두고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그런 낭비를 일삼는 셈이다. 이유를 따지자면 호르몬의 농간도 있을 거고, 세상의 농간도 있을 거고, 사람의 농간도 있을 것인데, 그 어디에도 내 탓은 없다. 자책은 습이 되기 쉽다. 나나 너같이 스스로에게 냉정한 자들은 의식적으로라도 다른 탓을 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런데 정말로, 대부분은 네 잘못이 아니더라.


눈앞에는 고양이와 동생과 책들과 편물이 어지러이 놓여있다. 침대에 달아둔 조명은 눈부시게 빛나는 중이다. 요즘은 살아가는 게 편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 코가 빠졌는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실을 떠 나가다가, 나중에서야 구멍을 발견해 버린다. 이제까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 구멍이 난 곳까지 실을 풀고 풀고 또 풀고, 다시 같은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너도 그렇지 않나? 분명 치열하게 생존하였는데,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고 구멍 난 삶의 일부를 발견하였을 때, 그 허무와 실망과 부담을 너도 느낄 터이다. 나는 아직도 몇 개의 코가 빠졌는지 알 길이 없다. 내가 발견한 구멍이 전부였는지도, 아니면 아직도 어디엔가 에러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나는 타인이 쪼고 간 구멍까지 수습해야 한다.


거대한 무엇인가가 나를 잘못 코딩한 거였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거친 시절은 전부 버그이니 나를 코딩한 누군가가 열심히 고쳐주리라. 진실은 그렇지 않고, 나는 10111010101 따위가 아니라 파이처럼 끝없이 늘어지는 숫자의 향연이거나 미지수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0이거나 null이거나. 널 보고 있노라면 그냥 값도 없이 null이 되어 사라져 버리고 싶은 때가 많다.


유독 비유가 많은 편지에 당황스러울 널 떠올리니 사과를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떨 때에는 숱한 비유가 가장 솔직한 마음을 반영한다. 원래 가장 근원적인 감정은 활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법이다. 변명은 변명이니 네 삶에 대한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이게 그 옛날 시인이 말한 최초의 악수가 될 수 있을까?


편지의 마지막은 늘 급격히 찾아온다. 그러니 너무 의아히 여기지 말도록. 대개의 편지가 그렇듯, 마지막은 애정 어린 단어로 메꾸어야겠다. 낭만적 단어의 나열이 아닌, 허무한 무의식의 나열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은 늘 너를 향해 있음을. 그 의식의 끝에 사랑이 있음을. 내가 너를 사랑함을. 내가 나를 사랑함을. 그리하여 정말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다.


n번째 사랑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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