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기] 어디에나 쏟아질 별들에게

5달을 밀린 과업 해결

by 이육공

들어가기에 앞서, 여행은 7월에 다녀왔으면서 다음 해 1월에나 여행기를 작성하는 점 저 또한 반성하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 테지만 제가 몽골에 또 한 번 다녀왔습니다. 이번엔, 조금 더 먼 몽골로요. 사색 없이 도파민만 있던 지난 여행과는 다르게 이번 여행은 적당한 사색과 적당한 즐거움으로 딱 알맞은 맛이었어요. 흐린 기억을 더듬어 그때의 마음과 이야기를 복원해 보겠습니다.


<구름 그림자>

몽골 여행의 대부분은 차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번엔 반나절 내내 이동한 일도 많았다. 자브항을 중심으로 짠 코스가 꽤 멀었다. 차멀미가 심한 편인데 몽골에서는 아무리 차를 타도 멀미가 나지 않는다. 뻥 뚫린 지평선과 점점이 찍힌 동물들 덕이다. 캔버스에 나이프로 유화 물감을 콕콕 찍어 올린 그림처럼 관념 속에서나 존재하던 풍경이 펼쳐진다. 몽골의 풍경은 말 그대로 드넓다. 카메라의 비율을 어떻게 잡아도 담기지 않는 광활함. 인간의 시야각에 담을 수 있는 최대치의 자연. 그 안을 달리는 것도 여행의 일부이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시야가 어둡게 물든다. 날이 흐린 것은 아니고 거대한 구름 밑으로 들어간 것이다. 창밖으로도 종종 거대한 어둠이 보인다.

"그거 구름 그림자야!", 지난 여행에도 함께한 암카삼촌이 말한다. 구름에도 그림자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일상의 그늘과 회색빛의 흐린 날이 구름 그림자인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왜 그걸 그림자라고 생각하지 않은 걸까? 초록빛 대지에 거대하고 동그란 그림자가 느릿느릿 이동한다. 아주 멀리 보이는 풍경일 테니 실제로는 하나의 마을보다 크지 않을까 싶다. 몽골은 그 광활함으로 많은 것을 품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나는 온전한 모양의 구름 그림자를 목격한 몇 안 되는 한국인이지 않을까? 아쉽게도 사진으로 남기진 못하였다. 그래도 눈으로 담아 마음에 남기었으니 되었다.




<지평선의 꿈>

지평선이라는 단어는 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책에서 처음 배웠다. 여행을 갈 때마다 가족에게 지평선을 볼 수 있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호남평야쯤 가야 할 거라는 대답을 듣고 실망한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수평선을 볼 때마다 지평선을 생각했다. 소설 속의 지평선을 상상하며 그냥 그렇게 넘겼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도 지평선을 보러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실 여행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다. 능동적으로 훌쩍 떠날 만큼의 부지런함이 없기도 했고, 그냥 그렇게 지평선의 꿈을 수납해 두었다.

몽골의 지천에 꿈이 깔려있었다.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라는 예이츠의 시가 떠올랐다. 눈 뜨고 꾸는 꿈이 그런 것이다. 먼 타국에서 나는 지평선도 보았고, 일몰도 보았고, 별도 보았고, 사운즈 오브 뮤직을 보며 궁금했던 에델바이스도, 호수 옆에서 살랑이는 이름 모를 들꽃도, 사막도, 한가로이 돌아다니는 동물들도, 조금만 다가가도 도망가는 새앙토끼도 보았다. 그러니까 몽골은 온통 꿈으로 가득하였다.




<마그리트의 눈으로 좇는 세상, 자브항>

이번 여행의 목적은 자브항이었다. 사막 한가운데의 호수라면 당연히 가봐야지, 미리 찾아본 사진들은 꽤 아름다웠고, 눈에 담은 실재는 초현실주의 화가가 만든 세계 같았다. 그러니까 사막이 있고, 모래 언덕이 곳곳에 자리 잡고, 그 앞에는 바다가 아닐지 의심되는 크기의 호수가 있어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많고, 호숫가에는 소들이 여유자적하게 돌아다닌다. 무척이나 강렬한 햇살 아래 이 모든 것이 한 번에 어우러진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모래사장과 듬성듬성한 풀, 여러 마리의 동물까지 전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그 자체였다. 화가들은 보지 않아도 본인의 눈 안에서 이런 세상을 마주하나 보다. 나는 상상을 이미지로 직조할만한 예술인이 아니라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이틀 동안 그곳에서 일광욕을 하기도 하고, 시리도록 차가운 물에서 수영하며 놀았다. 암카 삼촌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물에 던져진 나는 돗자리 위에서 햇살에 몸을 말렸다. 물 구경은 좋아하지만 물놀이는 그다지 취향이 아니다. 자브항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풍경 속에 삶을 내려놓으러 다시 가도 좋을 것 같다.




<현무암을 밟으면 풍경소리가 난다>

활화산인지, 휴화산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무튼 화산지대를 올랐다. 오르는 내내 현무암 자갈을 밟았다. 현무암 자갈을 밟으면 신기하게도 풍경소리가 난다. 쟈르락 쟈르락, 짤그락 쨍, 구멍 뚫린 가벼운 돌들이 부딪히며 경쾌한 화음을 만든다. 자갈이 너무 많아 산을 내려오다 결국 미끄러졌지만 그 와중에도 '소리가 좋군'하는 태평한 생각을 하였다.

화산의 꼭대기는 깊고 큰 구멍으로 파여있어 어쩌면 달의 크레이터에서도 썰매를 탈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여기서 썰매를 타면 죽을지도 모르지만 재미있겠다는 내 농담에 암카 삼촌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어어 진짜로 썰매 타고 내려가~!"라고 하였다. 주변의 한국인 관광객들은 그 말을 듣고, "여기서 썰매도 탄대"라며 정보를 교환했다. 그거 뻥인데 싶었으나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농담을 꿈처럼 믿을 권리가 있지 않을까? 어쨌든 몽골에서의 매일은 실없는 농담이나 풍경소리로 이루어진 소풍과 같았다.



<어디에서나 쏟아질 별들에게>

지난 몽골 여행기에서는 별똥별에 소원을 빌다 지쳐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쏟아지는 별을 보았는데, 왜 별은 봐도 봐도 아쉬운지 모르겠다. 제법 추운 밤에도 은하수를 눈에 담으려 오래도록 서 있었다. 몽골에서는 별자리가 한국보다 크게 보인다. 한국에서 보던 북두칠성이 말 그대로 하늘의 국자라는 표현과 어울렸다면, 몽골의 북두칠성은 게르를 5개쯤 이어 붙인듯한 크기로, 있는 힘껏 다가온다. 전갈자리도, 카시오페아도, 곰자리도, 모든 별이 너무도 가까이 존재한다. 이럴 땐, 성능 좋은 카메라가 없음이 아쉽다. 별 아래에서 나는 한 없이 작다. 인류가 별을 희망으로 삼고, 꿈으로 꾸고, 소원으로 빈 것은 수없는 반짝임에 있으리라. 지금의 삶은 제법 팍팍하여 희망도, 꿈도, 소원도 잃은 듯 돌아가지만 보이지 않을 뿐 별은 어디에서나 쏟아지고 있다. 밝은 낮에도 흐린 날에도, 도심에서도, 몽골에서도, 우리의 머리 위엔 별이 빛나고 유성우가 내린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 소원을 빌고, 꿈을 꾸고, 희망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너무 오래 뒤에 여행기를 쓰며, 그날의 생각을 더듬어보았다. 비록 그때의 사색만큼 명징하진 않겠으나, 그럼에도 몽골의 향기와 온기가 조금이나마 따라붙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암카 삼촌에게 2027년 여름 돌아가겠다 약속하였으니, 아마 그때 새로운 감회로 세 번째 몽골 여행기를 가져오지 않을까 한다.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풍경, 그리고 더해지는 새로움으로 그때의 몽골을 고대해 본다.






추신 1: 쓰고 싶은 글이 너무 많았으나, 몽골 여행기를 먼저 올려야 한다는 강박으로 쓰지 못했다. 그렇게 날아간 글이 꽤 많은데, 이제 마감 홍수가 좀 지났으니 성실히 글쓰기에 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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