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나날

맥문동이 핀 계절

by 이육공

이집트 신화에서 태양신 ‘라’는 매일같이 지옥을 지난다. 악의 신 ‘아펩’은 매일같이 동쪽으로 라를 쫓아내어 아침이 오도록 만든다. 무더운 여름이 방금이었는데 어느새 태양이 더 빨리 지옥에 들어가 오래도록 머무는 때가 되었다.


비교적 늦게 잠드는 편이지만 특별히 밤을 사랑하는 건 아니다. 늦게 귀가한 날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즐겨야 하기에 늦은 잠에 들 뿐이다. 홀로 오롯이 하루를 음미하지 못했다. 잠들기 아쉽다.


‘잠들기 아쉽다’, 예전에 영미권 친구들과 유학파 친구들에게 영어로 어떻게 하면 저 말의 뉘앙스를 그대로 전달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다들 영어에는 그런 말이 없다고 한다. 영어에서의 아쉬움은 오직 안타까움일 뿐이다.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이 부족한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충족되지 않은 그 간질간질한 감정을 한 단어로 말할 수 없다니 애석하다.


이집트의 ‘라’가 지옥으로 들어가고, 그리스의 ‘닉스’가 소멸을 상징하듯, 수면은 곧 하루치의 자신을 죽이는 행위이다. 눈꺼풀이 내려가고 암전이 찾아온다. 장기들의 움직임도 둔해진다. 수면의 시간 동안 이성은 기능을 잃고 무의식에게 핸들을 빼앗긴다. 매일 찾아오는 죽음의 시간만큼 생을 상실한다. 말 그대로 매일같이 상실하는 삶이다.


그럼에도 달가운 상실이여! 불멸이 재앙이듯 불면 또한 불행이기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달콤한 숙면을 맞이한다. 그렇게 상실한 생이 몇 해인가. 언젠가 죽음 또한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기고 찾아오리라. 얼마나 큰 아쉬움일지, 어떤 형태의 미련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늦은 귀가를 하며 문득 내려다본 발 밑엔 맥문동이 피어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맥문동의 계절이 왔었구나 하며, 상실한 만큼 축적된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한다. 꽃이 질 때 다시금 상실을 겪겠지만 돌아올 계절에 다시 피어날 보랏빛 꽃망울을 상상하며, 결국 잃어야지만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또 한 번 곱씹는다. 상실을 통해 회복하고 태어나는 것들에 대하여, 매일 상실함으로써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삶들에 대하여.


오늘은 이로써 꿈을 이루었으니 기꺼이 잠에 들어야겠다.







추신. 아직 몽골을 놓아줄 마음이 들지 않나 보다. 아쉬움이 옅어질 때쯤 몽골 여행기를 써야지, 아마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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