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기 티저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은 의무감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삶은 의무로 수행된다. 계율, 제도, 관계,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삶이다.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의무감이 사지에 줄처럼 묶여 있다.
오랜만에 찾아와 무거운 이야기로 운을 뗐다. 그러나 늘 그랬듯 가벼운 일상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뿐이다. 벌써 처서가 다가온다. 이런 더위에도 가면을 쓰고 멀쩡한 듯 살아내는 보통의 사람들이 경이롭다. 한 치의 무기력도, 짜증도, 우울도 내비치지 않고 사회적 가면을 바꿔가며 생활하는 것이 세상의 상식인가 보다. 상식에 어긋나지 않도록, 나 또한 지난 반년을 무기력으로 낭비하면서도 사람을 만나고, 과업을 수행하고, 어떻게 해서든 멀쩡한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이를 물며 보내왔다. 가끔은 이를 너무 꽉 물어 두통이 가시질 않았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번듯한 어른을 가장하는 일은 어렵다. 나만 그런가? 사실 다들 번듯한 어른으로 사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가? 아니면 이미 번듯한 어른 그 자체로 성장한 걸까?
삶, 그 자체를 고민하지 않으려 한다. 삶에는 이유가 없고, 인간의 존재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볍기 때문이다. 그리 가벼운 인간들이 이리도 무거운 삶의 한복판에 내던져졌으니, 다들 그 중압감에 짓이겨질밖에. 늘 희망과 사랑이 담긴 글을 쓴다고 여기는데, 이렇게 질척이는 감정을 함께 녹여내니 다들 우울한 글인 줄 아는 것 같다.
다시금 앞으로 되돌아간다. 아까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의무감이 사지에 묶여있다고 했던가? 일상은 의무감으로 수행되지만, 동시에 사랑이 지탱하는 것이다. 자칫 정신을 놓으면 진창에 빠질지 모르는 길에서 사랑하는 것들이 서로를 가까스로 끌어올려 준다. 어쨌든 살아간다는 건, 한 끗의 기분 차이로 달라지는 문제이다. 나는 사랑을 버거워하기도, 사랑을 찾아 나서기도,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기도 하다. 첫째는 내가 지탱해주어야 할 삶에 대한 버거움이지만, 둘째는 나를 지탱할 존재의 탐색이요, 셋째는 결국 다정함만이 인간을 세상에 묶어주는 끈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 옆에는 나와 같은 자세로 엎드린 고양이가 누워있다. 부유하는 털뭉치를 기꺼이 감내할 정도로 사랑하는 고작 6킬로의 생명체. 그 건너에는 동생이 앉아 감자튀김을 먹고 있다. 사랑인 줄 알았으나 애증이었던 이 애와, 이제는 증이 아닌 온전한 애정을 나누기로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우리 둘을 동시에 애정하는, 사랑스러운 친구가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 삶은 처절한 고독으로 드러나고, 사랑하며 사는 삶은 괴로운 외로움으로 나타난다. 사랑의 대상을 늘려나간다는 것은 그리움에 먹이를 주는 행위이다. 언젠가는 상실할 사랑의 자리에 분명 슬픔과 괴로움이 차오를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계속해서 사랑을 키워나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절한 고독보다는 함께 하는 외로움이 나은 듯하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내가 몽골까지 가서 사랑하는 것을 늘려온 여행기를 쓰기 위한 예열이다. 몽골 여행기의 티저가 이토록 진지할 일인가 싶지만, 때로 글이란 것은 나를 초월하여 내 멱살을 끌고 가기 때문에 도무지 멈출 수 없었다. 다만 진짜 몽골 여행기는 좀 더 가볍고, 다정하고, 따뜻해서 누구나 좋아할만한 이야기로 채우리라 약속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