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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g grrgak Jan 18. 2024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사진 <가와우치 린코>

#005 Editor. 성산




벌써 1월의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다들 잘 지내시나요? 저는 요즘 2년 동안 일했던 알바를 그만두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는데요, 사실상 백수의 노 스트레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잠도 엄청 자고, 보고싶었던 영화나 만화들도 잔뜩 보고, 또 준비해야 하는 것들도 느긋하게 하고 있네요.


며칠 전에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분석해야 하는 일이 있어 자료를 찾았는데요, 작품집이 아무래도 여러 권을 사기에는 부담이 되는 가격이라 어디 빌려서 볼 수 없나- 하던 와중에! 한 책방을 찾았습니다.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북촌에 위치한 사진 전문 서점 <이라선>입니다.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북촌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작은 간판이 보입니다.

0.5층은 카페가 있는데요, 사실 이곳이 책방이랑 연결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다른 가게입니다! 계단을 한 층 올라가면 아무 간판 없이 흰색 철문이 보이는데, 이곳이 이라선 책방입니다.

들어가면 보이는 풍경이 눈 돌아갈 것 같더군요.. 책이 정말 많아요. 그리고 전부 사진에 관련된 서적들입니다. 사진집과 사진 철학에 관한 책까지.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들뿐만 아니라 표지에 이끌려 좋은 작가들을 많이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배경 음악도 턴테이블로 틀어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엘피 소리가 정말 힐링이에요.



진열되어 있는 책들은 전부 판매하는 책들이었습니다! 책을 충분히 읽고 구매할 수 있도록 열람용 책이 맨 위에 놓여있는데, 상태들도 꽤나 좋았어요.


보고 싶은 사진집이 너무 많아 고민하던 중 저의 최애 사진작가의 책을 찾았습니다. 일본의 사진작가 가와우치 린코의 <M/E On this sphere Endlessly interlinking> 입니다. -원래 읽고 싶었던건 다른 시리즈였는데, 편집 디자인은 이쪽이 더 맘에 들었다는.-


린코는 제가 한창 사진에 빠져 전공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었을 때 알게 된 작가예요. 교수님이 외부에서 작가님을 초청하셔서 강의를 들었는데 끝나고 (갑자기 무슨 자신감인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작가님의 시각으로 제 사진을 평가받고 싶어 노트북을 들고 찾아갔었습니다. 그때 보여드린 사진이 그해 겨울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찍었던 것들이었는데요,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엮어 작업으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고민하던 와중이라 조언을 구하고 싶었어요. 그때 그 작가님께서 보여주신 레퍼런스가 린코의 작품이었습니다.



린코의 사진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초기 작품부터 작가는 생명이 가진 신비와 빛, 덧없음과 강함에 대해 표현해왔습니다. 작가의 일상과 그가 갔었던 여행지에서 자신을 강하게 사로잡았던 풍경을 보고 떠오른 감각, 감정이 작품의 배경이 됩니다. 작품들이 하나의 시리즈를 채우기 위해 촬영된 것이 아니기에 작업 시기도 다르고 사진들이 '수집'되었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느껴져요. 그의 사진에서 보이는 이런 섬세한 표현은 그 대상을 시간을 두고 여러 번 생각해서 비로소 나온 결과들이겠죠.


 <M/E> 시리즈


린코의 사진에서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를 뽑자면, 절대적인 대상이 없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의 제목 <M/E>은 mother earth과 me의 앞 글자를 딴 시리즈 타이틀입니다. 아이슬란드와 홋카이도의 대자연을 목격한 작가는 대지와 사람의 이어짐을 느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인상 깊게 남은 장면을 통해 자신만의 관념을 적립하고, 일상의 소재로 이를 연결하는 작업 방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 자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소재들, 감각적인 이미지. 그러나 사진 하나가 시리즈 전체를 대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행위를 통해 자신, 나아가 사람의 존재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身体を移動し、撮影したものと向き合うという行為でしか得られないものがある。 それはなぜ今ここに生かされているのか、という答えのない問いに少しでも近づくための、自分にとって有効な手段だ。'

-신체를 이동해, 촬영한 것과 마주하는 행위로 밖에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째서 지금 여기에 살게 하는가,라고 하는 대답 없는 물음에 조금이나마 다가가기 위한, 자신에게 있어 유효한 수단이다.-


'改めて現在の自分の立ち位置を確かめたくなった。 

 地域や国というくくりではなく、ひとつの星の上に在るということを。'

- 한 번 더 현재 자신이 선 위치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지역이나 나라라는 묶기가 아닌, 하나의 별 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生かされている'라는 부분이 해석하기 애매했는데요, 더 정확한 이해를 위해 한 설명을 첨부합니다.

한자를 활(活)이 아닌 생(生)을 쓰는 이카수(生かす)의 수동태, 이카사레루(生かされる)는 ‘∼가(  )를 살게 한다’ ‘살려 둔다’ ‘소생시키다’ 등의 단어인데, 현재 진행형 이카사렛데이루(生かされている)로 주로 사용합니다.

불교적 사고에 기인한 이 말은 일본인의 삶의 태도를 극명히 보여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삶이 내 의지나 나의 노력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것들의 손길과 희생 덕분에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매일 먹은 음식, 그것이 밥이든 나물이든 고기든 생선이든 원래는 생명이었을 것의 희생 위에 누군가의 손길이 더해져 내 입에 들어오는 것이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뉴스워치 <[최유경의 알쏭달쏭 일본어138] 당신을 살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그림을 그리는 전공이지만, 한때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도대체 뭘 그려야 하지, 어떻게 그려야 하지 고민하다, 대단한 소재로 의미 있는 것들을 담아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혔던 것 같아요. 한 장의 그림 안에서도 많은 것을 말해야 한다고 말이죠.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하기 전까지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린코의 작품을 접한 것도 작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작업. 그런 작업을 하고 싶어요.



일본의 사진작가, 가와우치 린코 

かわうちりんこ, 川内倫子, Kawauchi Rinko

1972 출생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과 사진을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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