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임을 당하는 관념들과 별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침을 열고 저녁을 닫았었는데, 어느 순간 사람은 내게 사라지고 사랑만 덩그러니 홀로 남았다. 사무치게 누군가를 그리워도 해본 것 같은데, 그것도 함께 녹아내렸다. 오갈 곳이 없는 사랑은 새로운 대상을 헤매는데, 내 사랑에게 길을 알려줄 수가 없다. 마실수록 갈증이 타오르는 어리석은 인간의 마음가짐이다. 인간을 대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논리 게임에 불과한 언어로 타인을 웃게 하고 울게 한다. 모든 것을 숫자로 바꿔 표현하려니 계속 마찰음이 난다. 무언가를 관념으로 규정하는 행태가 너무 괴롭다. 나는 눈을 감고 그 마찰음에 집중한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음정은 비상하여 밤하늘에 은은히 박힌다. 달에 가린 별들의 자취를 손으로 이어 보려다가 이것조차 나의 규정임을 깨닫고 바라보기만 한다. 생각할수록 이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짐을, 그것조차 생각할수록 더더욱 모르겠다. 인간을 모르겠고, 사랑을 모르겠고, 꿈을 모르겠고, 행복을 모르겠다. 이것들은 그냥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더욱 잘 설명하기 위해 지어낸 관념일 뿐인가. 인간은 실재하는가? 사랑은 실재하는가? 꿈은 실재하는가? 행복은 실재하는가? 나는 모른다. 실재한다면 그것을 가질 방법 또한 모른다. 한밤중에 혼자 앉아 있다. 벤치에 외롭게, 하늘에는 휘갈겨 날려 보낸 별들이 비추고. 나는 눈을 감는다. 별들은 묘비였고 밤하늘은 묘지였다. 손수 행복을 죽이고, 사랑을 죽이고, 인간을 죽이고, 꿈을 죽여 올려 보낸 밤하늘은 공동묘지다. 별들을 가리키며 별자리를 그린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랑과 꿈을 죽인 학살자였는지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을 추모하려고 가리키던 그 손에는 어느새 또 다른 칼이 쥐어져 있었다. 팔을 내리면 분명히 또 다른 무언가가 우연히도, 불행히도, 필연적이게도 죽을 것이다. 들어 올린 손가락을 내게로 찌르면 나도 별이 되어 밤하늘에 박제가 될까? 무수한 자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는 내가 손수 지은 공동묘지를 폐장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돈 말고 별을 세라고들 하는데, 돈을 세기는 싫고 별을 세기는 두렵다. 애초에 무언가를 센다는 것부터가 모든 것을 숫자로 바꿔 표현하려는 것 아닌가. 이미 죽어 별이 된 존재를 다시 죽이고 싶지 않다. 현상금 사냥꾼, 현상별 사냥꾼. 별을 죽이면 내게 뭐가 남을까. 왜 나는 별을 죽여야만 할까. 나라는 사람은 인간을 사랑을 꿈을 행복을 죽이고 하다 하다 이젠 별까지 죽이려 하는구나. 무릇 애도해야 할 것을, 매일같이 되새겨 반추하면, 그것 또한 능욕적이다. 숨을 쉴수록 내게 죽어가는 관념들. 아하! 사실 삶은 본질이 아니구나. 죽음이야말로 본질이구나. 나는 그들을 더욱 본질로 가까이 보내주는 숭고한 인도자이자 종교의 지도자였구나 하는 자기변명. 별을 죽이는 방법을 모르지만, 이렇게 지내다가는 이미 죽어 떠오른 별을 다시 한번 죽일 것 같다. 나는 별들을 되살리는 법도 아직 모르지만, 좀 더 성숙한다면 떠올려 보낸 별들을 내 곁으로 다시 둘 수도 있을 것 같다. 살아간다는 것은 끝없이 무언가를 죽여가는 과정이다. 그 결정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그 결과에 대한 애도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건 그들을 죽기 전의 과거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되돌린 과거의 모습은 현재의 내가 또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비가역적이며, 가역적이라도 무의미하다. 브라운 운동을 하며 퍼져가는 나의 살해 영역은 그의 형태가 투사되어 또한 별이 되어 올라간다. 숨만 쉬어도 관념이 죽고, 의식하면 더욱이 죽는다. 조심스레 그들에게 용서를 구해 보지만 이미 죽은 자들이기에 말은 없다. 용서를 구하는 그 행위야말로 그들을 두 번 죽인다. 천칭에 매달린 별들은 또한 마찰음을 내며 무서운 속도로 떨어진다. 나를 원망하는 만큼의 속도로 나를 향해 질주한다. 별들의 복수심, 그러나 내 손에는 이제 칼이 아닌 우산이 들려 있었다. 우산에 닿은 별은 빗방울이 되더니 허무하게 흘러내린다. 그렇게 별은 세 번째 죽는다. 이쯤 되면 내가 별을 몇 번이나 더 죽일 수 있는지, 별은 몇 번이나 더 죽을 수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빗방울이 된 별들은 시간을 역행하며 다시 밤하늘로 올라간다. 들고 있던 우산도 칼이 되었다가 다시 별을 향한 손짓으로 돌아간다. 별이 되어 올라간 관념들과 내리는 비는 참으로 자연적이기에,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이유는 관념을 죽여 별로 올려 보낸 마땅한 벌이겠다. 내가 갈구하는 것은 떠올린 씁쓸한 별이다. 마실수록 갈증이 타오르는 어리석은 인간의 마음가짐은 별의 원망이 가득한 성배 속의 빗방울이다. 그 성배 속에는 인간을 대하는 방법과 사랑을 하는 방법, 꿈을 꾸는 방법을, 행복해지는 방법이 분명히 담겨 있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을 죽였고 죽인 그들이 원망하며 내린 비로 채워져 있으니까. 사람들은 꿈이라는 이정표를 죽여 별로 올려두고는 자신들이 죽인 별을 이정표 삼는다. 어리석은 인간의 마음가짐을 한 잔 마시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통 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술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이건 우리가 죽여나간 것들이 흘린 원망 섞인 눈물이기에 쓰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관념과 별을 죽이는 방법에 대한 글을 비자발적으로 쓴다. 별을 애도하는 법이나 별을 되돌리는 방법, 두 가지 중 하나는 알고 싶다. 나라는 존재가 살아 있기만 해도 죽는 관념들, 그들을 구제해 줄 수는 없다. 친히 별이 되도록 죽여줄 수만 있는 비가역적 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밤하늘은 별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