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곳의 땅을 손가락으로 파기 시작하면
작은 구멍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그 구멍이 커져 가는 게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기도 하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단단한 흙이 나오면
손가락으로는 더 파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물을 부어 흙을 부드럽게 하기도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도구를 찾아보기도 합니다.
삽이 있으면 조금 더 깊게,
곡괭이가 있으면 더 빨리 파 내려갈 수 있겠지요.
하지만 어떤 날은
아무리 파도 바위 같은 흙에 막혀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삽질이라는 말은 흔히 헛수고를 뜻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손가락으로라도 흙을 긁어 보았기에,
내가 어디쯤까지 파 내려갈 수 있는지 알게 되고,
막혀 있는 곳에선 다른 방법을 찾아보게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가 단단한 흙인지,
샘물이 솟아날 자리인지조차
알지 못했을 겁니다.
때로는 삽질이라 불리더라도,
그 시간과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구멍이 깊어질수록,
언젠가 그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내 삶의 물길이 열릴 테니까요.
<작가의 서랍>
오늘도 나는 ‘삽질’을 합니다.
남들은 원래 하던 길을 가지,
왜 새로운 일을 시작하냐고 말하지요.
이미 파 놓았던 구덩이는
더러운 먼지로 가득 차 있고,
다시 들어가려니 숨이 막힐 듯 답답합니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땅을 찾아 삽을 듭니다.
이 일이 맞을까, 헛수고는 아닐까
스스로에게 수없이 묻지만
결국 손끝으로라도 흙을 긁어내며
조금씩 파 들어갑니다.
아직 깊지 않은 구멍이라도,
어제보다는 분명 더 깊어졌다는 걸 알기에
나는 오늘도 삽질을 멈추지 않습니다.
언젠가 이 자리에
맑은 샘물이 솟아날 거라 믿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