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봐 주는 것이 필요한 시간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진통을 하면서도 아이가 건강할지 걱정이 되어 두려웠다. 자궁선근종이 있어서 임신과 출산하기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아이가 나오고 첫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비소로 안심이 되었다.
간호사선생님이 싸개에 싸인 아기를 안겨주었다.
고되 했던 아기를 마주하면서 생소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안도감과 대견함, 고마움....
울던 아이가 내 품에 안기자 울음을 그치고, 젖을 찾으려 입을 오물거렸다. 천사 같은 아기! 내게 와준 아기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사랑 가득 키우자 다짐했다.
아이가 옹알이를 하다가 처음 "으음마"를 했을 때는 눈물까지 났다. "마암마" , "아아빠!"
아이의 엄마, 맘마, 아빠를 들으며 엄마가 됐구나 실감이 났다. 아이가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책육아를 시작했다. 태교도 책을 읽어주고, 기록을 하면서 보냈다. 잠자기 전, 젖을 물릴 때도 아이와 두 눈을 맞추고 소곤소곤 어릴 적 외할아버지와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다. 아이의 세상은 자궁을 나와 가족이라는 세상으로 넓어졌다. 책을 읽어주면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책육아를 실천하게 되었고, 그것이 아이의 언어발달을 도왔다고 생각한다.
첫아이를 시작으로 2년 터울로 공주님이 찾아와 주었고, 3년 터울로 막둥이 왕자님이 찾아와 주었다.
유산으로 아이를 떠나보낸 경험은 아이들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했다.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또한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였다.
"엄마에게 할 말 있어?"
둘째와 막내를 남편에게 맡기고 큰아이와 하천을 걸으며 아이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아이는 조심스레 말을 시작했다.
"엄마! 나 숨 막혀."
큰아이의 말을 듣고 충격에 질문도 못한 채 멍하니 걷기만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물었다.
"왜 숨이 막히는데?"
"엄마는 항상 차 조심해라. 신호등 자 보고 건너라.
언제 집에 오는지 확인하잖아. 친구들이랑 놀고 싶다가도 엄마가 걱정하니까 놀지 못하고 집에 오는 게 싫어."
"엄마는 걱정되니까 그랬지. 세상은 위험한 게 많으니까."
"나도 조심해서 다니고 있어. 이젠 걱정 안 했으면 좋겠어. 나도 이젠 초등학생도 아니고"
큰아이의 숨 막히다는 말이 철렁하게도 했지만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 아이가 대견했다. “그랬어. 그럼 진즉에 말하지 왜 참고 있었어?". "동생들 때문에 힘드니까 나까지 힘들게 하면 엄마 더 힘들잖아."
“엄마는 우리 아들이 다치지 않도록 주의했으면 해서 자주 얘기한 건데 이제 울 아들이 애기가 아니었네.”
마냥 어리게만 보였던 아들의 말을 들으니 사춘기라 예민해져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놈의 시키 엄마가 지 걱정해서 그러는 건데 숨 막히다고 머리 컸다고 이놈의시키가'하는 괘씸한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그동안 참으면서 지금이라도 말을 해주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큰아이와의 대화 시간을 통해 나와 큰아들은 서로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지켜봐 주는 것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걸.
큰아이는 엄마가 걱정하지 않도록 미리 연락을 주며 가정에서 학교로의 관계를 넓혀갔다.
나 역시 큰아들을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면서 아이가 또래친구들과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지금 큰아들은 24살이 되었다.
우리 가족의 장남으로 듬직하게 동생들의 고민 상담을 해주고 있다. 가족 간의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예전 친정엄마가 하신 말이 떠오른다.
'이 세상에서 쉬우면서도 어려운 게 자식이다.'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대화는 중요하다. 부부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다. 서로를 인정해 달라는 대화가 아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