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쉴 자격 있어
운동을 하던 중이었다.
숨이 찰 정도로 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가볍게 운동을 시작했다. 아파트단지를 담을 따라 걸으면 1번 도는데 20분이 걸린다. 땀이 나고 숨이 찼다. 빨리 걷기를 멈추고 가볍게 걸음을 바꾸고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도블록을 기대고 있는 민들레가 눈에 띄었다.
활짝 핀 어제와 달리 힘없이 보도블록에 기댄 모습이 마치 내 모습 같아 발걸음을 멈추고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너도 아프니?'
'더원서 그러니?'
'목이 말라 그러니?'
가방에서 생수병을 꺼내어 조금 뿌려주었다. 혹시 더운 여름에 목이 마를까 싶어서.
어젯밤에 내 모습도 이랬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업도 듣지 못하고, 저녁도 챙기지 못한 채
누워있어야만 했다. 눈을 떠보니 아침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막내가 말했다.
"엄마, 괜찮아?"
"어, 괜찮아. 그런데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
말소리를 듣고, 방에서 남편과 큰아들, 딸이 나오며
"엄마! 진짜 괜찮아. 병원 가자."
"무슨 일인데 병원을 가제."
식구들 표정은 걱정스러운 기색이 확연하게 보였다.
"뭔 일 있었어?"
"기억 안 나?"
아이들의 말을 듣고 난 후, 가족들의 반응이 왜 그랬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제저녁 먹은 약들의 부작용이 나타났던 것이었다.
•약물 과다복용•
저녁 약으로 먹어야 했던 약의 종류가 많고, 독한 약들이 많다. 자가면역체계가 무너지면서 자가면역질환까지 생기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가던 시기였다. 류머티즘 관절염 증상이 안 정치에서 벗어나 있어서 류머티즘 관절염 약도 늘어났다.
급성방광염으로 2주간의 치료를 받고 있지만 더디게 회복이 되고 있는 것이 걱정스러웠기도 했었는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저녁약으로 류머티즘 관절염약과 급성방광염약, 위염약, 불면증 약까지 먹고 잠들기 전에 블로그 포스팅을 마치고 누웠다가 약 먹은 걸 잊어버리고
또 한 번 저녁약들을 먹었던 게 문제였다.
그렇잖아도 독한 약들인데 두 번을 복용했으니
잠을 자면서 구역질을 하고, 몸도 떠는 현상이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들은 공황장애 발작이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팔다리를 주무르며 살피다 밤을 지새운듯했다.
딸이 보건행정과를 다니며 의료와 간호, 약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며 식구들을 안심시켰다고 했다.
전에도 한두 번 이런 일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구역질까지 한 적은 없었다. 잠든 채로 그런 반응을 보이니 식구들이 놀랄 만도 할터였다.
오늘은 약을 먹지 않기로 했다.
식구들은 나의 약봉투를 식탁에 펼쳐놓고
소형지퍼팩에 아침, 점심, 저녁, 취침약을 나누어 담고
날짜를 쓰며 차곡차곡 정리했다.
가족들을 걱정시키고 불안하게 한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눈물이 나려는 것을 꾹 눌러 참았다.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남편이 누룽지탕을 준비해 가져다주었다.
속이 뒤집어질 듯했지만 구수한 누룽지탕은 넘길 수 있었다.
머리도 식힐 겸 가볍게 걸을 겸 나왔지만
쉽지 않았다.
건강이 먼저란 말을 또 한 번 깨닫게 된 순간이다.
열정도 과하면 독이 된다.
빨리 회복하려는 조급함이 열정과다로 나타났다.
컨디션에 맞춰 천천히 나아가자.
조급함을 버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밤새도록 옆을 지켜준 가족들에게 고맙고 감사했다.
남편과 나선 산책길이 마음이 무겁게도 하지만
든든하게 지켜주는 남편이 있어 안심이 되었다.
남편은 말했다.
"그동안 식구들 챙기느라 고생했으니 지금은 자기 건강만 생각해. 내 눈치 보지 말고 알았지. 충분히 쉴 자격이 있어."
남편의 이 말을 듣고 싶어서 그랬을까.
'충분히 쉴 자격이 있어.'라는 말을 들으니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참! 많이 변했다. 울 남편. 변한 게 아니라 원래 이리도 따뜻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눈물이 주 채 없이 흘러내리니 남편이 눈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
"울지 마, 자기가 우니까 내가 더 미안하잖아."
투박한 남편의 손이 남편의 삶을 보여주는 듯해
더욱 마음이 찡했다.
이때다 싶어 말했다.
"미안하면 나 맥심커피 사줘."
"그건 안돼"
"왜 안돼?"
"속도 안 좋은 데 커피 마시면 안 되잖아."
"그래도 하루에 한 번만 마실께."
"저번에 자기가 그랬잖아. 커피 다 마시면 끊겠다고, 절대로 사지 못하게 하라고."
"내 입이 방정이다."
"커피 말고 다른 거 말해. 몸에 좋은 건 얼마든지 사줄게. "
"알았어. 한 번 내뱉은 말은 지켜야지."
커다란 수박을 들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