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움 속에서 발견한 작은 온기들

지나간 계절이 마음에 남기는 것들

by 이연화

구름이 해님을 가리면 세상은 잠시 회색이 된다.
밝음이 사라졌다고 해서 어둠이 온 것은 아닌데,

우리는 종종 그렇게 느낀다.
그 사이, 아무 말도 없이 눈이 내린다.

하얀 별사탕처럼.
차갑고 가벼운 것들이 공중에서 흩어지며 세상을 덮는다.
며칠 동안 이어지던 포근한 날씨는 온데간데없다.
조금 나아지는가 싶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삶도 그렇다.

잠시 숨이 트였다고 느낄 때, 다시 묵직한 현실이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눈이 내리면 풍경은 달라진다.
길은 길이 아닌 것처럼 보이고,

나무는 나무보다 선이 된다.
세상은 어느새 은하수처럼 가득 찬다.
가득 차 있지만 소란스럽지 않고, 하얗지만 눈부시지 않다.
겨울이 가진 힘은 바로 이 조용한 충만함에 있다.
헐벗은 나뭇가지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인다.
잎 하나 남지 않은 가지 위에 쌓이는 눈을 보며, 문득 생각한다.
비어 있음이 꼭 결핍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리 위에야 비로소 다른 것이 내려앉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겨울은 매번 같은 방식으로 보여준다.
가지를 가볍게 털면 눈이 탈탈 떨어진다.
잠깐의 눈보라가 일고, 다시 고요가 찾아온다.
이 짧은 소란은 지나치게 솔직하다.
애써 참아오던 감정이 어느 순간 쏟아지고,

아무 일 없던 듯 일상이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두 손을 벙어리장갑 안으로 깊이 넣는다.
차갑지만 견딜 만하다.
장갑 속 손바닥에 쌓이는 것은 눈이 아니라,

겨울의 조각들이다.
차가움, 적막, 기다림,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견한

아주 작은 온기.
어른이 되면 계절을 다르게 통과하게 된다.
눈 오는 날이 설레기보다 번거로워지고,
겨울은 낭만보다 대비의 계절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겨울 속에서 무언가를 줍는다.
말로 하지 못한 마음,
지나간 시간의 흔적,
그리고 쉽게 녹지 않는 감각들.
겨울은 결국 지나간다.
하지만 그 계절을 통과하며 손에 남은 조각들은

오래 남는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이렇게 말없이 쌓인 계절의 조각들을
주머니 속에 넣은 채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감성에세이 #브런치에세이 #어른의글 #계절의기록
#일상의사유 #마음의풍경 #조용한문장

매거진의 이전글위험한 불청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