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온벼리 첫 번째 에세이
기다리던 에세이가 나왔다.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
작가 온벼리의 첫 번째 수필집이다. 브런치에서 워낙 왕성한 활동을 하는 작가라 많은 분이 그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길 바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조급함에 매장에서 구매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온라인으로 주문부터 했다. 조용한 시간을 골라 포장을 열고 책을 펼친다. 책의 내용을 대강은 알고 있었기에 혹시나 모를 눈물 사태를 대비한다. 작가는 뇌수막염으로 장애가 생긴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일들을 기록했다. 장애가 생긴 아이. 여전히 난 장애인이란 말을 공개된 장소에서 쓰는 게 불편하다. 장애인에서 장애우로, 그리고 다시 장애인으로 변경된 호칭에 적응하며 생긴 그 어떤 오해가 나를 그리 만들었을 것이다. 그 정도의 어정쩡한 개념밖에 없는 사람이 책 내용을 지레짐작했음을 고백한다. 이 책은 펑펑 울라고 만든 책이 아니었다. 작가는 위로받고자 글을 쓴 게 아니라, 아픔을 지나왔을 누군가와 지금도 아픔 한가운데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글을 썼다고 한다. 아직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나는 가만히 그의 마음을 따라가 본다.
작가는 섬에서 자랐다. 드넓은 바다를 품고 자란 그녀의 이야기는 여름부터 시작한다. 가장 뜨거웠을 시기가 서럽다. 뱃일로 바쁜 엄마 대신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던 소녀, 사랑에 속아 힘겨워할 때 만난 남편, 그리고 계획에 없던 임신과 출산까지. 그의 이야기는 쉼 없이 파도친다. 분명 아픈 이야기다. 아픈 이야기가 맞는데,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아픔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삶의 모든 순간이 실은 환하게 빛났다는 것을 깨달은 후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꼭지가 가을로 넘어가자 책을 읽는 나의 시름은 다시 깊어진다. 작가는 그토록 두려워하던 일을 현실로 맞이한다. 첫째의 '수두증'. 6개월짜리 아기 몸에 바늘을 꽂고 메스를 들이대는 묘사를 읽고 있자니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는 것조차 미안해진다. 타인의 아픔을 이리 편히 봐도 되는 것일까. 당연히 부부의 고통은 가시가 되어 서로를 찔러댄다. 견디기 힘든 날들은 우울증이 되어 죽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우듯, 다행히 그에겐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눈이 있었다. 우연히 떠오른 영화 한 편에서 착안해 아이와 함께 춰 본 왈츠에 웃음꽃이 핀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 곡을 흥얼대며 춤을 추는 모녀의 모습이 그려진다. 내 아이들도 좋아하는 그 왈츠. '그래, 우리 이렇게 춤추듯 살자.'
겨울이 되자 작가는 더욱 혹독한 환경을 맞이한다. 아이는 '발작성 뇌전증(간질)' 진단을 받았다. 엄마로서 아이를 지키기 위한 그의 싸움이 벅차고 힘들어 보인다. 오죽하면 기독교인이 기도 대신 하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릴 다 질렀을까. 원망 섞인 절규가 하늘에 닿았는지 아이는 조금씩 차도를 보였다. 작가는 아이를 보며 울고 웃고 다짐하길 반복한다. 어쩔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강인해지려는, 강인해져야만 하는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계절은 다시 돌아 봄이 됐다. 한 가족에게 유독 매서웠던 추위도 그렇게 지나간다. 그의 이야길 따라가 보니 봄이라는 꼭지를 마지막에 둔 의도가 느껴진다. 작가는 절망 속에서 끊임없이 희망-아이의 이름은 새봄이다-을 말하려 했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책을 덮고 나서도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일일까.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려면 먼저 상처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타인의 편견에 다치지 않으려면 내 안의 편견부터 지워야 한다. (중략)
많은 고통은 타인이 아니라 나의 시선에서 비롯된다는 깨달음... 그 사실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그리고 그 자유는, 내가 가장 먼저 나 자신에게 다정한 어른이 되게 하는 첫걸음이 되었다.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