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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Oct 01. 2022

유시민의 표현 (2부)

유시민 표현의 기술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다툼을 벌이다 옆 반 선생님에게 잡혀 왔습니다. 보통은 말싸움으로 끝이 나는데 한 녀석의 목에 생채기까지 난 걸 보니 제법 큰일이었나 봅니다. 씩씩거리는 둘을 떨어뜨려놓고 진정도 시킬 겸 싸운 이유를 어보니 실소가 터져 나옵니다. 장원영이라는 인기 아이돌의 나이를 두고 누가 정확한지 말다툼을 하다가 그 사달이 난 겁니다. 인터넷으로 검색 한 번만 해봐도 분명히 알 수 있을 문제를 기질의 인지 이 어린 수컷들은 한치도 물러서질 않고 서로를 향해 으르렁 거립니다.



말이나 글로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요? 

유시민 작가의 이 질문은 세월호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충돌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이 끔찍했던 비극에 정치적인 프레임을 씌워 유가족을 비난하거나 저질스런 유언비어로 진실을 호도하사람들이 있었죠. 저 역시 그들에게 강한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같은 인간이 맞긴 한 건지 뉴스로 보는 그들의 주장은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로웠습니다. 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작가는 그냥 내버려 두라는 대답을 합니다. 이른바 '폐쇄적 자기 강화 메커니즘'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미 믿고 있는 것들과 다른 사실, 이론, 해석들은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그럼 원치 않아도 부대끼며 사는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요. 상대를 존중하면서 대화하는 것뿐이라고 작가는 또다시 대답을 합니다. 


푸드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가 떡볶이 논란으로 그간 쌓아온 대중적 인기를 일순간에 잃어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칼럼에서 그는 떡볶이는 정크푸드이므로 학교 앞에서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강한 양념으로 음식에 대한 분별력을 잃게 만드는 맛이 없는 식이라 평가절하했습니다. 이에 네티즌들은 즉각적으로 강한 반발을 했습니다만 황교익 씨는 여러 가지 자료를 예로 들며 물러섬이 없는 설전을 벌였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존중이 없었습니다. 황교익 씨는 국민들의 기호와 추억에 대한 존중이, 대중은 전문가에 대한 존중이 빠져있었습니다. 당사자는 아직도 억울하게 생각하겠으나 책임은 황교익 씨에게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인기에 도취되었는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깔아보며 계도하려 했었고, 이는 즉각적인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취향의 문제를 옳고 그름으로 나누려 했던 그의 부족한 분별력과 개인적 경험을 우위로 삼아 대중을 훈계하려 했다는 사실이 자신의 사회적 몰락을 촉발했던 거죠. 유시민 작가는 말로든 글로든 싸워서 이기려 하지 말자는데 수용하는 입장에서는 행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의견이 달라 평행선을 긋는 상대방에겐 의혹 한 조각만 남겨도 성공한 대화라는 말에는 수긍할 수 있었습다. 황교익 씨도 자신의 주장에 청자를 위한 보다 사려 깊은 존중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지금과는 매우 다른 결과가 본인의 눈앞에 있었을 겁니다.


우리가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덜 어리석어지기 위한 수신의 방편으로,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게 바꾸려 한다는 작가의 말은 그대로 떼어내어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에 대해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이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자기소개서에 대한 이야기와 베스트셀러들의 이야기에서는 읽는 사람을 고려하고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칸트의 예를 통해 독자가 감정이입을 하기 좋게 글을 쓰는 법도 참고하기  좋습다. 작가는 표절과 발췌, 비평의 원칙을 두루 짚어가며 먼길 떠나려는 자식에게 두고 간 물건은 없는지 염려하는 부모처럼 이것저것 챙겨주려 합니다. 글쓴이의 마음이 느껴져 좋았다고 할까요. 책의 마지막까지 강조되는 것은 결국 글을 잘 쓰는 방법은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문장을 쓰는 기술, 글로 표현할 정보, 지식, 논리, 생각, 감정 등의 내용과 독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능력을 작가는 마음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글은 결국 작가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글쓴이의 마음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것은 예측 가능한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습니다. 또한 글을 쓰는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응원도 좋았습니다.


정훈이 작가의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반가울 정도로 적지 않은 분량의 만화가 후반부를 이어받습니다. 작가가 어떻게 만화가가 되었는지 자전적 스토리로 진행이 되는데 정치에 무지했던 자신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 동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시대를 그려냅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주제의 단조로움을 정훈이 작가가 잘 컨트롤했다고 보입니다.


싸웠던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리에 앉아 옆반 담임교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괜히 일을 키워 죄송하다며 싹싹한 태도를 보이는 그는 제눈엔 불완전 연소를 모르는 하루 하루를 열정적으로 보냅니다. 열정의 화신 곁에 냉정의 표본인 제가 있으니 불협화음이 생길 법 하지만 그런 적이 없다사실서로가 언어적, 비언어적 태도로 늘 존중하기 때문일 겁니다. 표현에 무슨 기술이 필요한가요. 한 관상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사주팔자를 보는 것보다 관상이 낫고, 관상을 보는 것보다 심상을 보는 것이 낫다는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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