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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Sep 29. 2022

유시민의 표현 (1부)

유시민 표현의 기술

많은 분들은 아니지만 저의 졸필을 읽어주신 분들이 남긴 라이킷 덕분에 자연스레 그분들의 흔적을 좇아 글들을 읽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시는 분들을 보니 세상에는 이렇게 다채로운 사고들이 있었구나라며 새삼스레 놀라기도 합니다. 투자의견, 연애 코칭, 감성 에세이, 인문학 등 시선잡는 다양한 글들을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틈틈이 읽어봅니다.      


작가분들이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해 논하는 글을 읽다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단순 명료 행동강령을 보고 있자니 쉽게 감화되어 당장이라도 자판을 두드리면 누군가의 마음을 훔칠 문장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조차 듭니다. 좋은 글들에는 공통점이 있겠죠. 탄력 받은 김에 제 사고의 외연을 넓히고 싶어 휴대폰을 내려놓고 뒹굴 거리던 몸을 일으켜봅니다. 개념을 잡아줄 인도자를 찾아 몇 년 동안 읽지도 못하고 쟁여만 놓은 책장 속 욕심들을 빠르게 훑어보았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책을 선뜻 선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읽은 베스트셀러에 그 어떤 소감을 얹은들 무슨 의미가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으나, 너무 유명해 외려 해보지 못한 그의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는 일도 괜찮을 듯하여 금방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대중의 평가가 꽤나 엇갈리는 유시민 작가는 강력한 팬덤만큼이나 싫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정치의 일선에서 그가 보였던 행보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인데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 정치사의 상징적이었던 장면들을 많이 생산해냈던 그이기에 그런 이미지가 확대, 재생산된 것으로 보입니다.


약관의 나이에 항소이유서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말과 글로 치열하게 싸우던 청년이 이젠 귀만큼이나 얼굴도 순해져 정치인 시절의 나찰 같은 모습은 흔적을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저는 늘 인간 유시민이 좋았습니다. 그의 글과 표현에서 느껴졌던 울분, 희망, 당당함이 그가 걸어온 길을 잘 보여줬기에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방송도 현명하게 잘 활용을 했습니다.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화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좌파정권의 나팔수란 비아냥 또한 가만히 보면 명예로운 멍에 아닌가 싶습니다.


가독성이 높고 정갈한 그의 글쓰기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지 유시민 작가의 여러 저서 중 표현의 기술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책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책의 상당 부분을 시네 21에서 활동한  시사만화가 정훈이 작가와  협업을 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페이지의 중간중간 정훈이 작가의 만화가 등장하는데 풍자가 장기인 만화가가 유시민 작가와 서로 마이크를 주고받듯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만화도 표현의 한 방법이죠. 이 책은 같은 주제를 서로가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 차이를 비교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정훈이 - 마이너리티 리포트 , 시네21

글은 왜 쓰는 것인가부터 책이 시작됩니다. 조지 오웰의 나는 왜 글을 쓰는가를 예로 들어 범주를 나누죠. 첫 번째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두 번째는 미학적 열정, 세 번째로는 역사에 무엇인가를 남기려는 충동, 마지막으로는 정치적인 목적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예전 오프라인 강의에서도 김훈 작가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목적을 밝힌 바 있는데 이 책에서도 김훈 작가의 말이 등장합니다.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는 개소리를 하는 놈들은 다 죽여야 해"라는 당대 명문장가의 과격한 예술론을 볼모로 삼아 유시민  작가는 서로 다른 글쓰기의 목적 사이에 울타리를 세우지 말자라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김훈 작가의 말은 사이비들에 대한 진저리에서 나온 표현이었겠지만 목적의 다름에 관용을 보이자는 젠틀함이  설득력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베스트셀러였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대한 일화인상 깊습니다. 변영주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 책에 대한 불만을  비속어를 섞어 비판했는데 저자인 김난도 교수가 이에 트위터로 울분을 표시했습니다. 몹시도 자존심이 상해 벌인 일이었겠지만 남을 위로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정작 본인의 작은 흔들림에는 강한 반발을 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습니다. 상황이 우스워져 버린 것은 고스란히 김난도 교수의 몫이 되었습니다.



글이 길어져 2부로 넘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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