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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Nov 16. 2022

예술가의 항암 치료기

그림 에세이 이유경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국내에 거주하던 외국인 친구가 저에게 한국어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말은 좋은 뜻인 거지?"

"응, 좋은 사람이란 뜻이니까 매우 긍정적이지~"

"그런데 왜 거절할 때도 괜찮아요라는 말을 써서 헷갈리게 하는 거야?

"응?"



생각해 보니 우리는 거절할 때도 괜찮아요 라는 말을 씁니다. 저는 편의점에서 봉투를 거절할 때

이 말을 주로 쓰더군요. 그 속뜻은 - 봉투를 권해주신 호의는 고맙지만 저는 필요치 않습니다 - 라는 거절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니 외국인이 듣는다면 헷갈릴 만도 합니다. 익숙하여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의중을 잘 파악해야 하는 문화권에 살고 있습니다.




유쾌 발랄 코끼리의 그림 에세이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라는 신간이 나왔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한 이유경이라는 젊은 설치예술가가 자신의 투병일기를 무겁지 않도록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그림 에세이로 출간했습니다. 책의 머리말에서 알 수 있듯 작가의 일상이 예고 없이 찾아온 유방암으로 인해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커다란 변곡점이 생기는데 안타깝게도 작가에게는 암이 그랬습니다.


작가는 스스로 밝혔듯 에너지가 넘쳐 주체하지 못하는 편이니 암 역시 이미 자신에게 벌어진 일로 심플하게 생각하고 씩씩하게 맞서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암세포와 싸워나가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었나 봅니다. 암이 예전과는 다르게 완치 가능한 병이라고들 말하지만 그 과정이, 병마와 싸워나가는 일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아프고 고단하게 그려집니다. 잦은 항암치료로 육체의 노화는 가속화되고 가슴은 절제됐으며, 머리는 빠지고 몸은 퉁퉁 부었습니다. 여전히 아름다울 시기인 40대 여성에게 암이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나 가혹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모습을 거대한 몸집에 움직임은 둔하고 머리털도 없는 코끼리라고 묘사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랄랄라 유쾌한 코끼리가 되어주겠다며 자신의 아픔을 특유의 에너지로 승화하는 의지를 보입니다. 글의 마디마디마다 그녀의 강인함이 느껴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책에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를 의학 용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역시나 모르는 의학 용어가 나오면 덜컥 겁부터 납니다만, 작가가 겪었던 일들이 날짜별로 기록되어 비슷한 경험 또는 막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게 많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상황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팁도 있으므로 도움이 될 법합니다. 항암치료 전 눈썹 문신과 다양한 색상의 가발 구매 에피소드에는 웃음도 나옵니다.

 

책에서 알 수 있듯 작가의 치료는 아직 진행형입니다. 좋은 소식으로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니 걱정은 잠시 접으려 합니다. 독자가 작가를 걱정까지 하다니 이 좀 이상하죠.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글을 쓰려했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실은 저자가 제 대학교 선배입니다. 정확히는 친해질 기회가 적었던 선배이지만 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던 사람이기에 주변의 신뢰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선배로 알고 있습니다.


괜찮다니요. 씩씩하기 어려운 일에 그렇지 못 한다한들 어떻겠습니까. 저는 건넬 수 있는 위로가 짧은 리뷰밖에 없지만, 작가의 글처럼 보고 싶었다 허그해 줄 사람이 주변에 많이 있겠죠. 위로에도 체온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입니다.


끝으로 서두에 적은 말 대로 괜찮아요를 거절의 의미로 쓰고 싶습니다.


괜찮다는 말은 괜찮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사람도 많이 만나시고 잘 치료받고 완쾌되어 다시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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