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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Dec 19. 2022

가장 크리스마스다운 영화

니콜라스 케이지 - 패밀리 맨

쏟아지는 눈을 보며 퇴근 걱정인 저를 보고 앞자리의 동료가 웃습니다. 자기는 누구와는 다르게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다는 말에 조금 부끄럽더군요. 말이 나온 김에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회색빛 하늘을 가득 채운 눈을 보니 묘한 정취가 생겨 손에 들린 믹스커피도 제법 근사해 보입니다. 이때쯤이면 보통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뭘 할지 고민이었지만 당분간은 아이들 덕분에 몇 년은 더 집에서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이미 학부형이 된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네요.


라때는 크리스마스 데이트가 근사한 식당과 영화 한 편이 공식이었는데 요즘 커플들이라고 많이 다르진 않겠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보는 영화는 같은 감정을 공유하며 추억의 일부가 되어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단 과거의 연인과 같이 본 영화를 현재의 연인과 본 것으로 헷갈리면 큰일이 벌어집니다..)

누군가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영화를 보려 하거나, 혼자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려 한다면 저는 고민 없이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몇 번이고 보고 또 본 영화. 니콜라스 케이지 패밀리입니다.




잭 캠블(니콜라스 케이지)은 월 스트리트의 가장 능력 있는 인수합병 전문가입니다. 맨해튼의 펜트하우스에 거주하며 페라리를 모는 성공한 삶을 살죠. 여성과는 가벼운 사랑만 나누며 직장에서는 일밖에 모르는 냉철한 사람이지만, 그런 잭도 13년 전에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던 평범하고 순수한 대학생이었습니다. 잭은 자신에게 찾아온 큰 기회인 영국 기업의 인턴쉽을 위해 연인 케이트(테아 레오니)와 떨어져 지내기로 합니다. 공항에서 잭과의 긴 이별을 맞이한 케이트는 불길한 예감에 연인을 붙잡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재의 우리를 선택하자고 말이죠.


"난 우리를 택할래."


케이트의 간절한 바람도 성공을 원하는 잭의 마음을 돌려놓진 못했습니다. 그 결과로 둘은 헤어지고 13년이 지난 후 잭은 성공한 인수합병 전문가가 됐습니다. 큰 사업을 앞둔 크리스마스이브 날, 어김없이 야근을 마친 잭은 퇴근길에 들린 편의점에서 범죄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 속에서 기지를 발휘해 총을 든 노숙자(돈 치들)를 달래 일을 해결하는데 그 노숙자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길을 걸으며 삶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잭에게 노숙자는 질문을 합니다. "진짜 제대로 된 삶이 무엇인데?" 


잭은 당연하게도 일반적인 대답을 하죠. 성공, 안정적인 직장, 가족 등 뻔한 얘기를 하는 잭에게 노숙자는 모든 것은 네 책임이니 놀라지 말라는 알 수 없는 얘기를 마치고 사라집니다. 긴장된 하루를 가벼운 술로 달래고 잠을 청한 잭은 아침에 눈을 뜨자 기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옆에는 13년 전에 헤어졌던 연인 케이트가 누워있었기 때문입니다. 놀란 마음에 서둘러 자리를 뜨려 하지만 익숙한 펜트하우스가 아닌 뉴저지의 작은 마을에서 처음 보는 아이 둘과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자신을 사위로 부르는 케이트의 부모님을 뒤로하고 맨해튼으로 도망치지만 그곳에서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펜트하우스건 자신의 회사건 잭은 그곳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때마침 황망해하는 잭에게 자신이 몰던 페라리를 타고 등장한 노숙자는 모든 것을 설명해줍니다. 잭의 선한 행동에 하늘에 계신 분들이 감동하여 내린 선물이 이 상황이란 겁니다. 그냥 잠시 다른 선택을 했던 과거 자신의 삶을 엿보는 것. 잭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원치 않는 가정적인 남자(famaily man)가 됩니다. 이 영화는 이기적이었던 잭의 좌충우돌 성장기입니다.   


스토리의 기본적인 골격은 다소 평범하게도 가치관이 다른 남녀의 (남자 = 일, 성공) (여자=사랑, 가정) 이야기입니다만 신비로운 설정을 더해 재미를 놓치지 않습니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은 조금만 변주를 주어도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죠. 사랑의 블랙홀, 이프 온리, 나비효과 등 수많은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을 거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늘 실수를 반복하고 후회를 하는 우리들은 '만약에 말야'를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노래도 전우성만약에 말야가 인기가 있었네요.


화성에서 온 남자는 일과 성공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금성에서 온 여자는 사랑을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둡니다. 요즘의 눈으론 전근대적 사고로 보일 수 있으나 거부감이 전혀 안 드는 건 두 주연배우의 연기 때문일 겁니다. 특히 둘의 눈빛 연기는 볼 때마다 진짜 부부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 처음 감상하신다면 의식하며 보셔도 좋겠습니다. 요즘에야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이은 개인사로 망가진 이미지가 강하지만 당시에는 연기력이 절정에 가까웠을 때라 그의 빼어난 연기를 볼 수도 있습니다. 여주인공인 테아 레오니 역시 연기는 물론 너무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잭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당위성에 방점을 찍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후 비디오테이프로 소장을 했고, 그다음에는 DVD까지 샀지만 이제는 편하게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으니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는 변함이 없겠죠. 크리스마스에 사랑 빼고 무슨 할 얘기가 있을까요.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니 잭이 눈을 맞으며 자신의 변화된 삶을 사랑하게 된 장면이 떠오릅니다. 과연 잭은 잠시 엿보는 삶에서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요? 이 영화는 공항에서 시작되어 공항으로 마무리되는 수미상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영화를 보시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눈이 내리는 공항 라운지에서 지나간 얘기를 나누는 둘의 모습은 잊히지 않을 긴 여운을 줍니다. 혼자인 사람도, 곁에 누군가가 있는 사람도 사랑을 하고 싶게 만드는 가장 크리스마스다운 영화 패밀리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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