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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Jul 12. 2022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설전

출근 전 화장실에서 이를 닦다 오늘 해결해야 할 전날의 미해결 과제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한숨이 안의 약 거품을 자연스레 뚫고 나옵니다. 찬물로 입안을 헹궈도 개운한지 모르고 기분은 어제 베란다에 널어놓은 이불마냥 무겁고 눅눅합니다.


늦은 밤에 학부모에게 문자를 하나 받았습니다. 아이를 통해 상담 동의서를 받았는데 우리 아이를 학교폭력 가해자로 취급하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는 문자. 이 문자의 주인공은 학급 내에서 여러 차례 자신보다 약한 친구를 폭력과 장난 그 어느 중간에서 괴롭힘을 지속하여 저를 난처하게 만든 녀석입니다.(학부모의 의견은 아이가 장난이 좀 지나친 편이긴 한데 심한지는 몰랐다 입니다) 피해학생의 어머니는 아이의 일방적인 피해에 분노와 울분을 토로했지만 저와의 상담 끝에는 아이가 가해 학생과 잘 어울리기를 바라며 가해학생이 낙인이 찍히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담임의 교육방침에 믿음을 가져보시겠다는 단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제 어깨의 짐은 한층 더 무거워졌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업무적으로 손쉬운 해결을 위해 선도위원회를 열어 크던 작던 경고를 주는 게 수월한 일입니다. 가해학생의 행동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에 절차에 맞는 일처리가 교사에게는 안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소명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 끝에 담임의 재량으로 저와의 지속적인 상담 및 외부 폭력 상담 프로그램을 보내기로 했었습니다. 시간이 걸리고 고되더라도 교육의 참 의미처럼 아이가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결론을 내린 거죠. 교육자는 믿음이 없다면 하루하루가 고역인 일이기에 교육관 중에는 성직관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제 기대와는 다르게 아이의 어머니는 통화로 동의까지 했었던 일이 막상 서류를 받고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화가 나 한밤 중에 담임교사에게 문자를 보내 불만을 표시합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홀로 방에 앉아 문자를 내려다보며 이 일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생각하다 그 암담함에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이런 감정의 상태로 보내는 답변은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기에 답문을 잠시 미루려 했지만 저는 그리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가 아닌가 봅니다. - 오해가 있으실 수 있으나 필수적인 일은 아니다, 아이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고민을 한 일이지만 자녀를 제 자식처럼 생각 안 해 외부상담이나 보내려 한다고 오해하실 수 있겠다, 천천히 고민해보시고 선택하셔도 된다-는 말만 공손할 뿐, 실은 잔뜩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문자를 답변으로 보냈습니다. 막상 참지 못해 문자를 보내고 나니 아차 하는 빠른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처음에는 늦은 밤에 이런 불평 문자를 보냈다는 무례함이 내가 화가 난 이유라 생각했으나 하루가 지난 다음 차분히 저라는 사람을 들여다보니 답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내가 선의를 발휘해서 배려하고 애를 썼다는 일이 그 대상에게 부정당하자 화가 난 거구나, 나는 내심 이런 종류의 일들도 능숙하게 처리하는 능력 있는 교사라는 인정을 받으려 했었구나 라는 생각에 미치자 긴 한숨이 못나게 다물고 있던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왔습니다..



법정스님과 성철스님의 대화를 기록해 놓은 책이 있습니다.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설전(雪戰)이란 책입니다. 이 대화의 주인공 중 한 분이신 조계종의 6대 종정 성철스님은 한국 불교역사에 길이 남을 선승이셨습니다. 엄격하고 철저한 고행을 통해 한국불교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신 분이지만 스스로 말하시길 사람들이 자신에게 현혹되어 찾아오는 게 싫으시다며 10년 동안 철책을 쳐놓고 수행에만 정진하시기도 하고, 자신을 만나려면 3000배를 해야 만나볼 수 있다는 등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일화가 많으신 분이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철스님도 법정스님이 찾아오면 즐거워하시며 기꺼이 시간을 내실만큼 매우 아끼셨다고 합니다. 법정스님은 교단 안팎에서의 활동만큼이나 수필집인 무소유로 대중들에게 매우 널리 알려지셨죠. 따로 설명이 민망할 정도로 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기신 스님이시라 추가 설명이 불필요하겠으나 개인적으론 법정스님의 수필을 읽다 보면 품격 있는 글에는 향기가 난다는 말이 종종 떠오릅니다. 생전에 추구하셨던 무소유의 삶만큼이나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잘 정돈된 스님의 글에는 은은한 향이 배어져 나옵니다. 


법정스님이 해인사에 강사로 머물던 시절 특유의 성정 탓인지 성철스님의 방침에 불경할 수도 있는 의문을 제기해도 너그럽게 받아주시기도 하고, 평소 법정스님의 글을 당대에서는 최고라고 인정하시기도 했다 하니 두 위대한 고승의 대화에 관심이 안 갈 수 없었습니다. 내용을 보면 이 책의 제목처럼 두 분의 대화는 새하얀 눈밭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눈싸움만큼이나 열정적이고 순수합니다. 시작은 자기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한 작은 눈 뭉치 같은 질문과 대답들이 오고 가다 종반으로 향할수록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커다란 눈덩이처럼 살을 붙여 굴려갑니다.   


길지 않은 분량의 책을 축약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본래 진리는 단순하다고 하였던가요, 두 고승의 대화는 결국엔 글을 읽는 자신을 향합니다. 수행을 하려는 수행자의 마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깨달음을 얻어내려는 치열한 노력. 이 모든 것들의 해답은 결국엔 자신에게 있다는 불교의 오랜 가르침을 두 분의 문답으로 재확인시켜줍니다. 저에겐 머리로만 학습됐기에 굳이 노력하여 이해하지는 않았던 명쾌한 진리. 

그렇습니다. 익숙했기에 외려 의식하지 않아 제 마음의 틈새에서 그런 방식으로 요동을 쳤던 거겠죠. 제가 느끼는 고통과 기쁨의 모든 것은 모두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수행 같아야 할까요. 얄팍한 지식과 경험으로는 아직 알 수 없어 남은 길은 그저 번민하며 따라갈 뿐이겠습니다. 펄렁이는 귀처럼 가벼운 천성에 감당 안 되는 무거운 가르침을 얹으려 하니 그 부조화에 온 몸이 아픕니다만 제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으나 제가 바뀐다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설익은 결심을 다시 해봐야겠습니다. 그 시작으로 학부모에게 사과의 문자를 보내야겠네요. 전날의 문자는 죄송했으며 다시 한번 저와 함께 아이를 위한 좋은 방법을 고민해보시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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