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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Jun 02. 2023

누가 인간이 선하다 말했나

뤼트허르 브레흐만 - 휴먼카인드

인간은 본래 악합니다.


사람들이 순자를 잘 모른다 하더라도 매일 보는 뉴스엔 악행의 기록이 넘쳐나니 굳이 성악설을 강조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으로도 알 수 있듯 증오는 인간의 DNA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핵전쟁 또는 큰 재해로 자연상태로 회귀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할 겁니다. 홉스의 사고실험처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질 것에는 의심이 여지가 없겠죠. 세상은 늘 엉망진창이었기에 강한 법만이 야만을 억누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문명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악하다는 원죄를 인지하고 교육(또는 처벌)으로 계몽해 왔기에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들은 대부분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퍼진 것이며, 인간은 본래가 선한 존재라 주창해 서구로부터 주목받는 사상가가 등장했습니다. 이런 한가한 소리나 할 틈이 없을 유럽일 텐데 철도 한참이나 지난 성선설의 재탕이 주목받고 있다니 조금은 놀랍습니다.  


그 사상가는 뤼트허르 브레흐만이라는 네덜란드 출신의 저널리스트입니다. <가디언>, <워싱턴 포스트>, <BBC>등에 기사를 송고해 온 기자라는 그의 배경에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전 세계로 확대된 그의 시야는 고통과 분노로 가득 찬 세상을 목격하고 이를 뉴스로 생산해 왔을 터인데 인간이 악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책을 읽어 봅니다. 작가는 초반부의 챕터부터 작심한 듯 제러미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를 타깃으로 삼습니다. 또한 오랜 기간 동안 인간이 악하다 믿을 수밖에 없었던 사례들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허점들을 찾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면 필연적으로 마주칠 권위들에게 그의 연구는 매우 도발적입니다. 작가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전복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책의 두께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페이지는 빠르게 넘겨집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시작부터 작가는 플라시보 효과와 노시보 효과를 예를 들며 우리의 믿음에 대한 의문을 던집니다. 몇 가지의 사례를 통해 진실의 의미를 묻죠. 인간에 대한 우리의 비관론은 노시보 효과와 같지 않냐며 작가는 뉴스의 폐단을 설명하고자 공을 들입니다.


세계의 미디어가 세상의 부정적인 소식을 전하는데 열을 올리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며, 그 이유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라는 연구결과를 인용합니다. 뉴스가 사람들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설탕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도 같다는 말에는 잠시 저의 일상도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뉴스 검색의 대부분을 사회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는 기사를 보는데 집중하고 있었으니까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파리대왕'에 대한 작가의 조사를 기점으로 멀찍이서 관망하는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생겨납니다. 1951년 윌리엄 골딩이라는 영국의 한 교사가 만든 이 소설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수천만 부가 팔린 20세기의 고전입니다. 어느 섬에 불시착한 소년들이 생존을 위해 작은 사회를 만들지만 결국 내분과 반목으로 사망자가 생겨나며 절망에 빠지는 이야기로,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인식하게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이 소설은 사실주의적 서사문학의 교과서라고 불렸습니다.


어린 시절 이 소설에 큰 충격을 받았던 작가는 골딩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그의 삶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알코올중독자에 우울증을 앓고 있던 골딩은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삐뚤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조사결과는 가벼운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충격적인 증언과 가족사에는 말문이 막힙니다. 브레흐만의 조사가 사실이라면 어쩌면 우린 내면에 괴물을 키우고 있는 한 인간의 망상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는지도 모릅니다. 작가는 그렇다면 파리대왕 같은 허구가 아닌 실제로 비슷한 사례는 없었는지 샅샅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곤 정 반대의 결과를 찾아냅니다.            


1965년 6월, 가톨릭 기숙학교 세인트 드루의 학생 6명이 어른들의 허락 없이 몰래 여행을 떠납니다. 그것도 겁 없이 배를 훔쳐서 말이죠. 그들은 통가섬에서 출발하여 피지나 뉴질랜드로 가겠다는 13살 아이들 다운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배는 8일간 표류하고 가까스로 아타섬이라는 무인도에 상륙하게 됩니다. 무인도에서 그들은 모두의 기대처럼 현실판 파리대왕을 찍었을까요?


헛된 기대와는 다르게 1966년 9월 11일에 구조되기 전까지 그들은 서로를 위하고 도우며 생존을 위한 모든 일을 해냅니다. 다친 사람은 배려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말이죠. 심지어 그들은 신체적으로 최상의 상태까지 유지한 채로 구조되어 세상의 놀라움을 삽니다.  


챕터가 넘어갈수록 이 순진한 양반이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라는 비웃음의 입꼬리는 점점 내려갑니다. 오히려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어떤 것이었는지, 어떤 정보를 기반으로 믿고 있었는지 의심까지 하게 되죠. 작가는 서두르지 않고 우리가 알고 있던 대표적인 사례들을 차례차례 전복시키며 자신의 주장을 조용히 이어갑니다. 그런데 그 의미는 아주 시끄럽습니다. 왜 논란의 책이라고 불렸으며 주목을 받았는지 이해가 갑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 제러미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실험 등 기성 권위들의 허점들을 파고들어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는데 보는 제 머릿속이 다 멍해집니다. 정말 우리는 잘못된 정보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던가요.


그 유명한 나치장교 아이히만 재판에 대한 작가의 주장은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1961년 4월 11일 그날의 재판에 모두가 관심을 보였던 건 A급 전쟁범죄자이자 괴물 아이히만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전부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대중의 기대와는 다른 평가를 합니다. 전범 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이었으며, 단지 생각 없는 관료일 뿐이었다고 기술하죠. 악의 화신이어야만 했던 아이히만이 실은 평범한 공무원이었다고 평가하며 '악의 평범성'이란 유명한 말을 사람들의 뇌리에 남기게 됩니다.


하지만 작가는 최근 역사학자들의 아이히만에 대한 다른 결론을 소개합니다.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검거되기 전 몇 개월 동안 인터뷰한 내용이 존재했었는데, 그 내용엔 재판장에서의 발언처럼 생각 없는 관료가 하는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무런 후회도 없었고 심지어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자부심조차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능동적인 전범이자 광신자였습니다.


혼란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던 것처럼, 보통의 인간들이 특수한 상황에 처하면 모두 악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아주 특수한 사례를 일반화해 모두에게 원죄의식을 심어주었던 걸까요. 머리는 차가워지고 책 읽기를 멈추고 생각에 빠지는 일이 빈번해집니다. 저는 순진한 독자는 아니라서 확증편향, 선택적 취사로 가득 찬 글들은 경계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강한 힘이 느껴집니다. 책의 종반까지 인간이 악하다는 근거가 되는 대표적 사례와 연구를 조목조목 반박하니 할 말이 사라진다고 할까요. 다른 분들은 책을 읽고 나면 어떤 감정이 들지 모르겠으나 이전의 생각을 이어가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 주제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가독성도 뛰어나네요. 지극히 논쟁적인 휴먼카인드를 추천합니다.  

 

인플루엔셜 출판사의 리뷰제안으로 쓰게 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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