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이 위대한 이유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지금이야 요즘은 5, 6세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에 많이들 보내지만
당시에는 중학교 가기 전에 영어를 배우는 건 특별한 일이었다.
특히나 ‘중산층’에 조금 못 미치는 부모님에게는 영어교육이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부모님의 사정이 넉넉지 않은 집에서 아이 유학을 보내는 것은 더욱 그랬다.
우리집이 그랬다.
나의 부모님은 영어를 배운 적이 없었고, 나의 어머니는 대학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아들아, 너는 영어도 세상도 미국에서 배워라.’ 하시고는
전재산을 들여서 나를 유학을 보냈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고,
체구는 미국인 친구들의 늦둥이 동생보다 더 작았던
아시아 소년은 미국 아이들 틈에서 가끔은 모르는 말도 눈치껏 알아들으며
미국살이를 해야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혼자서 유학을 떠난 건 흉도 아니고 자랑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공부든 기숙사 살림이든 열심히 해야 할 뿐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미국인들이 남한인지 북한인지 물어봤었다.
그나마 남쪽, 북쪽을 물어보면 똑똑한 사람이었다.
한국이 대만이나 홍콩처럼 중국 근처의 어느 섬인가보다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내 주변의 한국 유학생들은 다들 부잣집 아이들이었다.
그 친구들의 서울집에선 청소와 밥 차리는 건 엄마가 아닌 ‘이모님’이 한다고 하길래
‘친척 이모가 꽤 부지런하구나’라고 생각했다.
부잣집이 아닌 집에서 유학을 보낸 건 우리 집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엔비디아(NVIDIA)의 창업자 젠슨황(Jesen Huang)도 그랬다고 한다.
젠슨 황의 부모님도 전재산을 털어서 젠슨을, 유학을 보냈고,
젠슨 황도 나도 미국에선 아주 작은 동양에서 온 아이였다.
큼지막하고 때로는 험악한 미국 아이들 틈에서
겁도 나도 외롭기도 했지만
아주 잘난 사람은 아니더라도 못난 사람은 되지 말자며
조심조심, 하지만 단단하게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혼자 지내면서
유머와 해학을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살았을 것이다.
외롭고 힘들 때는 그 웃음을 자신을 위해 썼을 것이고
돈과 여유가 생겼을 땐 다른 사람을 위해 썼을 것이다.
기자들이 물을 때 항상 이렇게 대답해주는 것처럼:
젠슨 황은 항상 가죽 재킷을 입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번은 기자가 ‘여름인데 가죽 재킷 때문에 덥지 않아요?’라고 물어보자
“Oh, it is, but it’s fine because I’m cool” 라고 했다.
(아 덥죠, 더운데 괜찮아요. 나는 쿨하니까)
쿨가이 젠슨 황이 만든 회사 엔비디아의 뜻을 보면
‘본격 차세대 질투 그래픽카드’같은 느낌이다.
의미를 뜯어서 살펴보면
NVIDIA는 NV(Next Version; 차세대)와
라틴어 Invidia(인비디아: 질투, 부러움)를 합친 이름이다.
젠슨 황이 서른 살이 되던 1993년에 엔비디아를 만들며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차세대 그래픽 처리 장치를 만들자’라는 뜻으로 이름 지었다.
Invidia(라틴어로 질투)에서 유래한 단어는 아래 두 단어가 있다.
*Envy(엔비: 부러워하다)
*Envious(엔비어스: 부러워하는)
우리 한국인들은 (부럽다)라는 표현으로 I envy you! 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우리나라에선 ‘부럽다, 좋겠다’는 상대방을 띄워주는 ‘배려’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미국사람들은 부럽다는 문장을 I am jealous!(아임 젤러스)로 훨씬 많이 쓴다.
Jealous는 ‘질투하는’이라는 뜻인데,
‘나는 너가 질투난다’라는 말은,
속으로만 질투하는 한국인의 정서에는 맞지 않다.
부러우면 지는 거니까.
하지만 Jealous는 긍정적인 감정을 담을 수도 있다.
이유는 Jealous의 어원은 라틴어 Zelus(젤루스: 열정, 경쟁심)에서 나온 단어로,
오늘 날의 영어단어 zealous(젤러스: 열정적인)의 조상이다.
즉, I am jealous는 ‘질투’보다는
‘그대의 성공과 행복에 나도 열정적으로 느껴’라는 뜻이다.
질투도 내가 더 잘 되고 싶은 열정에서 나오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질투처럼 강렬한 감정에 대한 어원을 찾으면
그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자세히 볼 수 있다.
Jealous의 참뜻을 이렇게 알았다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질투 가득한 속담보다는
‘사촌이 땅을 사니 배가 부르다'라는 속담이 있지 않았을까?
없었을 것 같다.
아시안 남자가 백인과 연애하는 법
젠슨 황은 미국 오레건주의 어느 공대로 진학했다.
그곳도 한국의 공대처럼 남자는 수백명이고 여자는 서너명이었다.
젠슨 황은 몇 안 되는 여학생 중 예쁜 백인 여학생 로리(Lori)를 좋아했다.
당연히 수백 명의 다른 남학생들도 로리에게 crush(크러쉬)가 있었다.
Crush의 원래 뜻은 ‘으스러뜨리다, 좁은 공간에 밀어 넣다’이지만,
‘좋아하는 감정, 사랑에 빠짐’이라는 뜻도 있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그 사람이 자꾸 생각나고
그 사람이 가슴을 때리는 울림이 강해서
가슴이 짓눌린다고 표현했다.
그 감정을 잘 모르는 초등학교 땐
‘누구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대요’라고
노래를 하며 놀리는데 Someone has a crush on you(누가 너 좋아한대요.)라고 한다.
젠슨 말고 다른 남자들도 로리에게 crush가 있어서
근육, 돈, 말발 등의 수컷새가 암컷새를 유인하듯 각자가 가진 것을 뽐냈다.
젠슨황에겐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좋은 머리가 있었다.
그래서 젠슨 황은 로리에게 공부를 알려주고 숙제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미국인들이 흔히 가진 편견으로
‘Asians are good at math (아시안은 수학을 잘해)’라는 말이 있다.
이제는 ‘정치적 올바름’이란 이름 아래 눈치 보며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잘 하는 걸 잘 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한국, 중국, 일본인은 구구단을 노래로 부르는 민족이다.
그리고 그걸 못 외우면 무시당하거나 매를 맞는 민족이다.
숫자를 읽을 때도 일이삼, 이얼싼, 이치니산 등 음절이 짧다.
그리고 11이면 10+1이니까 열흘이라고 한다. 직관적이다.
영어에선 11은 ten one이 아니라 eleven이고
13은 three teen이 아니라 thirteen이다. 규칙이 없다.
한국, 일본, 중국은 일, 십, 백, 천, 만 이렇게 자릿수마다 이름을 바꾸지만
영어는 thousand, million, billion (천, 백만, 십억) 등 천 단위마다 이름을 바꾼다. 어렵다.
수학을 잘하기 위해선 수를 표현하는 언어가 쉬워야 하는데,
영어는 수를 읽는 규칙도 뚜렷하지 않고 발음도 길다.
아시아 국가들이 영어권 나라보다 수학을 잘 할 수밖에 없다.
젠슨황은 대만출신 답게 수학을 잘했고
근육도 돈도 아닌 수학을 재밌게 설명하는 재치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났다.
지금이야 한국이 인싸 나라가 되었지만,
BTS와 오징어게임이 있기 전의 한국 유학생들은
수학을 가르쳐주면서, 숙제를 도와주다가 연애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나도 그랬다.
숙제를 도와주며 젠슨 황과 로리는 쇼핑몰도 가고 영화도 보았다.
그때만 해도 미국의 10대 데이트코스는 쇼핑몰밖에 없었다.
쇼핑몰은 영화관과 값싼 음식, 비교적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젠슨황은 ‘내가 30살이 되면 창업해서 남부럽지 않게 해줄게.’라고 약속하고 결혼을 했다.
실제로 30살이 될 때 그는 ‘남이 부러워할 만한 회사를 만들겠다’라며 엔비디아를 만들었다.
엔비디아 이름에 들어간 라틴어 Invidia(질투, 부러움)은 로리에게는 없고 젠슨에겐 있다.
젠슨 황의 아내 로리는 세상 부러워할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고
젠슨 황의 리더십과 회사의 기술력은 모두의 부러움을 받게 되었으니까.
젠슨 황이 안 하는 것
젠슨 황이 아주 싫어하고 하지 않는 것이 사람들을 해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말하기 부담스러워서, 미안해서’ 등의 소심한 이유가 아니다.
그가 사람들을 해고 하지 않는 이유를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I would rather improve you than give up on you.
(나는 사람을 포기하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해요)
Often times people are so close to success.
(대부분의 사람이 조금만 더 하면 성공할 수 있는데요.)
Could you imagine that you gave up just right before they got it?
(사람들이 요만큼만 더 하면 성공하는데 그 직전에 포기하면 어떤 기분이겠어요?)
I would rather torture them into greatness.
(나는 사람들을 포기하는 것보다 그들의 위대함이 나올때까지 쥐어짭니다)
젠슨 황이 싫어하는 ‘해고하다’는 영어로 ‘fire’이다.
fire는 활활 타는 불인데, 어떻게 해고한다는 뜻도 있을까?
15-16세기에 쓰이던 총은 쏘는 과정이 복잡했다.
1단계: 장전(Loading): 총알과 화약을 총구에 가느다란 막대기로 밀어넣기
2단계: 점화(Priming): 점화용 화약(프라이밍 파우더)을 화약받이에 넣고 점화장치에 걸어두기
3단계: 발사(Firing): 방아쇠를 당기면 심지가 화약과 닿으면서 총알을 밀어냄
이런 소총을 성냥처럼 불을 붙여서 쏜다고 하여
성냥(매치: match)과 방아쇠가 잠금을 푼다고 하여 방아쇠(락: lock)를 합쳐서
matchlock(매치락) 소총이라고 부른다.
매치락 소총은 한 발 쏘고 재장전하는데 시간이 1분, 2분씩 걸렸다.
한 발을 쏠 때마다 이 짓을 반복하다 보니
재장전을 하는 동안 적들이 수백 미터를 뛰어서 벌써 코앞까지 와 있었다.
그리고 재장전하는 데 너무 오래 걸리다 보니
병사가 “장군님, 재장전을 마쳤습니다!” 했을 땐
“제군, 전투는 이미 끝났다네.”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이렇게 옛날 총은 불을 붙여서 총을 쏘았으므로
fire는 불 이외에도 ‘총 쏘다, 발사하다’ 라는 뜻을 가졌다.
이후에 fire라는 단어는 총이 총알을 내보내듯
직장에서 직원을 쫓아낼 때도 fire(해고하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젠슨 황은 직원을 fire(해고) 하지 않고 torture(고문하다, 쥐어짠다.)라고 했는데
torture(토쳐: 고문하다)의 어원은 라틴어 torquere(토르퀘레: 비틀다)이다.
Torture 뜻이 고문이 된 이유는 조선시대의 고문 중 주리를 비트는 것처럼 몸을 비튼다는 듯 때문이다.
라틴어 Torquere는 오늘날 영어 다음과 같이 남아서 ‘비튼다’의 의미가 있다.
*Torque(토크: 회전력, 비트는 힘)
*Distort(디스토트) = Dis(멀리, 떨어져서)+Tort(비틀다) = 사실을 비틀어서 말하다, 왜곡하다
*Extort(엑스토트)= Ex(바깥쪽)+Tort(비틀다) =(주머니를 틀어서 돈을) 빼앗다
Torture(고문)은 뼈와 살을 비튼다는 뜻이지만
젠슨황이 말한 것은 물이 묻은 수건을 짜내듯
직원의 잠재력을 끌어낸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젠슨 황은 1:1 회의를 하고 보고를 받는 것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회의는 영어로 meeting 외에도 conference(컨퍼런스)를 자주 쓴다.
Conference 라틴어 어원은 Con(함께) + Ferre(옮기다, 가져가다)이다.
여러 사람들이 한 곳으로 장소를 옮기고 모인다는 뜻이다.
Ferre(옮기다)는 아래 동사처럼 여러 단어에 남아있다.
*Transfer(트랜스퍼): trans(건너서)+ferre(옮기다): 다른 곳으로 옮기다 = 환승하다, 옮기다
*Infer(인퍼): in(안쪽)+ferre(옮기다): 의미를 안으로 가져오다 = 추론하다, 유추하다
*Offer(오퍼): of/ob(강조, 앞으로) +ferre(옮기다): 필요한 것을 앞에 갖다주다=제공하다, 내놓다
*Refer(리퍼): re(다시, 뒤로)+ferre(옮기다): 좋은 평가를 자리를 옮겨서 해주다= 언급하다, 추천하다
이렇듯 -fer가 들어가면 옮기다는 뜻이고,
사람이든 물건이든, 사람의 입장이든 위치를 바꾸는 것은 에너지가 든다.
젠슨 황은 이처럼 쓸데없는 겉치레에 에너지를 쓰는 것을 싫어한다.
차라리 그 에너지를 그가 앞에서 말했듯이
자신의 위대함(one’s greatness)에 쓰기를 원한다.
많은 사람들은 젠슨 황을 시가총액 4000조에 육박하는 엔비디아의 수장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아주 어려운 형편으로 유학길에 오르고
부끄럼과 수줍음을 극복하고자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해보고
‘내가 수학 숙제 같이 해줄게… 나랑 주말에 만날래?’라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어필했던 똑똑한 순수함,
순수한 똑똑함도 함께 봐줬으면 좋겠다.
정리
1. 라틴어 Invidia(인비디아)는 질투이다.
2. 영어 단어로 Envy(엔비: 부러워하다)가 여기서 유래되었다.
3. 나는 너가 부럽다: I envy you. 는 잘 쓰지 않고,
I am jealous. 가 훨씬 많이 쓰인다.
4. Jealous(젤러스: 질투하는) 단어는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Zealous(젤러스: 열정적인)와 같은 어원이므로 긍정적인 느낌도 있다.
5. 아시안이 수학을 잘 하는 이유는 언어의 직관성과 경제성에 있다.
숫자 11이 ten one이 아니라 eleven인 것은 비효율적.
6. Fire은 불, 총쏘다, 그리고 총쏘듯이 사람을 보내다(해고하다)라는 뜻이다.
7. 영어단어에서 -fer이 들어가면 ‘옮기다’의 뜻이다.
Conference: 회의
바쁜 사람들 오라가라 옮기면 힘드니까 쓸데없는 회의는 하지 말자.
"I wear this leather jacket to remind myself
that GPUs aren't the only thing that should be cool."
그래픽카드만 쿨해야 하나? (*그래픽카드는 발열이 심해서 식히는 기술이 중요함)
나도 쿨하니까 가죽자캣을 입는겨.
-젠슨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