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왔다. 작은 학교라 비슷한 학번이면 대충 안면 있다.
업계 십수 년인데 모르기가 더 어렵다. 그 정도 아는 사이다.
새 사무실 구경도 하고, 원포인트 레슨 받고 싶다 했다.
어렵게 꺼낸 목소리.
제품을 만들었다. 양산 자금이 필요하다.
어떻게 투자를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
목소리 한편엔 지금껏 아쉬운 부탁 없이 해왔다는 자부심, 자존심이 있다.
노트북을 폈다. 회사 소개서.
자본금, 주주, 연혁, 인력, 배경, 기술, 시장, 제품, 기능,,, 많이 봤던 순서다.
백팩에서 주섬주섬 꺼냈다. 제품들 하나씩 설명했다..
무겁고, 딱딱한 걸로 가득 차 있다.
그 짐들을 혼자 다 지고 다녔구나.
내가 물었다.
회사 소개서 말인데, 딱 그거 하나지?
그렇다 했다.
영업할 때도, 협력사 구할 때도 같은 자료지?
그렇다 했다.
거기에 모든 자료가 다 있었다.
한 자료로 모두 해결했다.
다음 질문.
고객, 파트너사, 투자사는 관심사가 같다고 보나?
아니겠지요. 그래도 결국은 회사 모든 부분을 알려고 하지 않을 가요?
그럴 거야. 한데 처음부터 몽땅 궁금하지는 않을 거야.
듣고 싶은 부분이 있겠지. 네가 그거 언제 말하나 기다릴 거야.
애써 참다 중간에 먼저 물어볼 수도 있고.
또 물었다.
지금은 네가 찾아가야 하지? 상대보다 더 아쉬운 쪽이지?
그렇다 했다.
이 상황에 지루하기까지 하면?
코 앞에 닥친 시험 족집게 힌트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쭉 들을까, 집중해서.
뭔가 해결해야 하는 사람에겐 기능을 이야기하고
싼 거 찾는 사람한텐 가격부터 들이밀어야지.
왜 창업했는지 궁금한 사람한텐 그걸 맨 앞에 놓고.
첫 몇 단락이 중요해. 흥미를 끌어내야지.
그럼 대화가 시작되고 이야기가 전달될 거야.
저쪽은 한두 사람한테 듣는 것도 아니잖아.
다목적, 늘 어디서나 한결같은 회사소개서.
이게 최선? 니한텐 최적이지. 상대방한텐 아니야.
맞춤 전략이 있어야지.
최고 선수로 모았다는 월드컵 국대도 상대에 따라 다르게 경기하잖아.
맞춘 선수 발탁도 하고
운도 따라줘서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이 독일을 한번 이겼잖아.
아이폰 정도 되면 어디서나 같은 제품만 팔아도 된다.
몇 고객 놓쳐도 절대 다수 고객이 좋다 하면
커스트마이징, 로컬라이제이션 불가, 배짱 튕겨도 돼.
IR은 다르잖아.
다수란 게 없거든. 대상은 몇 군데.
한번 한번이 중요해.
투자자마다 천차만별, 각각 맞추진 않아도
몇 가지 버전, 맞춤 레퍼토리가 있어야 해.
거기에 맞게 자료를 준비하면 더 좋을 거야.
제품 영업용으로 투자자한테 설명한다면 글쎄..
IR 페이지 다시 생각해보라 했다.
......
1년에 수조 원이 투자된다는 건
1,000여 명 심사역들이 죄다 놀고 있지는 않다는 거다.
찾아도 찾아도 들어주는 심사역이 없는가?
반응하는 심사역이 없는가?
당신은 늘 똑 같이 반복하지는 않았나?
지루한 독백만 한 건 아닌가?
역지사지, 상대방이 되어보자.
내가 만든 자료 다시 보고,
이야기에 끌리는가 자문해보자.
저쪽 입장 잘 모르겠다면 준비 더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