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존댓말이라도 갑질

by 고병철

이번 주도 여러 사람을 만났다. 업계의 선배로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분이다. 처음 뵌 건 십수 년 전, 동료가 퇴사하고 같은 업체를 관리했다. 매월 경영간담회를 했다. 그분은 이공계 전공에 MBA 출신으로 제품에서 경영까지 많이 이야기하셨다.


조곤조곤 이야기하시며 투자업체 경영진과 대화하고, 나는 줄곧 들었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 속에서 치미는 속내도 고운 말로 나직이 말씀하셨다.


어느 날은 가방 속에서 카메라를 꺼내셨다. 회사 곳곳과 제품을 찍으셨다. 그때는 피처폰 시대. 폰 카메라는 기록용으로 어림없던 시절이었다. 업무를 위해 저렇게 개인 무기를 구입하셨구나. 나는 생각하지 못한 적극성이었다. 저렇게 내일처럼 해야지.. 그런 부분을 본받았다.


한편, 같은 나이 분들에게는 편하게 이야기하셨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말을 높였다. 어린아이에게도 존댓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젠틀하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의도가 몸에, 말에 배여 계셨다.


하지만 대화는 겉돈다. 그분의 화법은 듣는 사람도 경직되게 했다. 정중하지만 불편한 상대. 나도 정확한 거리감만 잘 유지됐다.


그분도 알고 계신 듯. 직원들과 뭔가 유대감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고민이시라고.


연륜이 중요한 농경문화. 그래서 상하관계에 따라 말이 다르다. 높이고 낮추고. 이제는 디지털 노매드 시대. 수평조직으로 바꿔야 한다고들 한다.


영어로 이름을 부르고, 직급을 없애고, 모두 존댓말 쓰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한다. 그런 변화가 도움은 된다. 말을 거칠게 함부로 못하니 높은 언성을 좀 줄어들 거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존댓말만 쓴다고 수평적 조직은 아니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너도 조곤조곤 나와 똑같은 스타일로 해달라고 한다면 이미 기울어진 상태다. 불신을 깔고 본다면 극존칭도 의미 없다.


배려와 존중은 말보다는 내용. 자율성에 있다. 말씀드렸다. 동료에게, 아랫사람에게 한번 기회를 그냥 줘보시라고. 주어진 권한을 어떻게 쓰는지, 남용하는지, 엉뚱하게 쓰는지, 지금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계속 의심하고 신경전 벌이는 것보다 훨씬 싸게 먹힌다고. 또,,, 갑질은 존댓말이라도 갑질. 더 재수 없다는 말씀은 차마 못 드렸다. 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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