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우선주는 문제없어요.

by 고병철

이천 몇 년. 후배가 찾아왔다. 기술이 무지 좋은 업체가 있다 소개했다. 지름 3미리, 두께 1.5미리 초소형인데, 지향성 고성능 마이크를 만든다. 소재 기술까지, 동박에 라미네이팅도 직접 해서 품질이 나온다 했다. 삼성전자를 뚫었고 노키아도 납품 요청이 오고 있다. 핸드폰에 몇 개씩 쓴다. 몇 년 전 전환사채로 투자했고 만기가 다가왔다. 매출이 계속 증가해서 생산자금 운영자금이 더 필요한 데 문제는 소송. 전직장에서 창업자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고소했고, 창업자는 무고와 영업방해로 맞고소했다. 양측은 대화 없는 극도의 대치 상태로 앞으로도 상당기간 합의는 없을 듯. 그때는 소송이 걸려 있으면 상장이 어려웠다. 전환사채를 보통주로 전환하자니 소송으로 상장이 불투명하고, 만기 상환 청구하자니 업체는 상환여력이 전혀 없다. 자금조달과 전환사채 처리가 골치였다. 고민 고민 끝에 만기 되는 전환사채를 우선주로 재투자하고, 신규 투자도 우선주로 하기로 했다.


우선주는 회사에 이익이 쌓이고 주주가 요청하면 회사가 상환한다. 이익이 없으면 안 된다. IPO가 안 돼도 회사만 좋으면 투자자는 원금과 계약된 금액을 회수할 수 있다. 덕분에 투자 허들이 낮아진 거다.


이천 년 인터넷 기술 기업들이 무더기로 상장했다 주가가 폭락했다. 코스닥 지수가 280을 찍고 80대로 떨어졌다. (이후 산정방식이 1/10로 분할되고 지수 자체가 10배로 커졌다) 상장심사 기준에 수익성이 추가되었다. 각종 게이트가 터지면서 대주주 도덕성, 경영 투명성이 더해졌다. IPO 문턱을 점점 더 높였다. 심사역에게 우선주 상환권은 보검이었다. 투심위에서, 그래도 이익 나면 상환 가능하니 일단 투자해 보시죠 할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스타트업 투자 = 우선주, 등식이 만들어졌다. 미국이 먼저 그랬다.


고마운 우선주가 때때로 이슈다.


사실 우선주는 문제가 아니다. 회계기준이 문제다. 몇 년 전부터 새로운 회계기준은 전환사채, 우선주의 상환권을 실시간 비용으로 채무로 인식하라 강제한다. 영업이익이 개선되는 것과 별개로 스타트업들이 투자금 때문에 완전 자본잠식, 완전 아이러니다. 그래서 상장 예비심사 청구할 때 주관사는 우선주주에게 보통주 전환을 요청한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환한다. 리스크를 감당하고 상장에 배팅하는 거다.


또 공연히 눈총 받는 데는 우선주와 투자 계약을 섞어서 (혼동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창업자와 회사에게,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동의 또는 협의를 요구한다. 이건 우선주라서 요구하는 게 아니다. 보통주든 전환사채든 모든 투자에 해당한다. 투자자는 수억, 수십억, 수백억을 투자하지만 지분은 작다. 주식 다수결로는 안된다. 동의(협의)권은 창업자의 혹시 모를 일방적인 (불건전한) 의사결정을 막는 수단이다. 패시브 투자의 단점을 보완하고 먹튀와 사기를 막자는 의도다. 하지만 포졸 열명이 도둑 한 명을 못 잡는다고, 대놓고 치는 사기는 방법이 없다. 때때로 창업자와 투자자의 생각은 지구인과 화성인만큼 다르다. 이건 따져보면 신뢰와 운용의 문제다. 창업자와 스타트업은 초심을 지키고, 투자자 측은 투자와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나름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 상황에 맞춰 판단할 수 있도록 말이다. 심사역과 투자사, 출자자, 출자자 그 뒤에 있는 분까지. 시장과 동떨어진다, 막무가내다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말이다.


여기에 투자자가 여럿일 때 또 큰 문제가 발생한다. 동의권의 충돌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데 충분히 예상되지 않는가. 합리적 이유가 있던 없던 누구 하나라도 반대하면, 창업자와 스타트업은 이도 저도 못한다. 또 10억을 투자하나 100억을 투자하나 동의권은 동등하다. 평등한 듯 불평등하다. 여기에야 말로 주식수 바탕의 다수결이 필요하다. 이건 설정의 문제다.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는 투자자들끼리 한 목소리를 만들고, 그런 투자자군 끼리 목소리를 조율하는 과정을 설계하면 된다. 주주간 계약이다. 사안별 동의뿐만 아니라 단체가 돼야 하는 액션 결정의 수렴도 포함해야 한다. 창업자뿐 아니라 모든 투자자를 넣어서. 하지만 우리 스타트업계에서는 아직 확실히 정립되지는 못했다.


우습게도 기업가치가 수 배로 뛰면 고의성 위반을 해도 투자자가 고민이다. 이슈 제기가 실익이 없어서. 하지만 실적 급상승은 잘 없다. 바닥 다지기가 필요하다. 투자 이후 허니문, 투자자가 인내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인기 있다고 지분 희석은 최소화하고 투자금은 최대한 땡기는 고밸류 싫으면 말고 전략은 위험을 내포한다. 부메랑이 있다.


더 중요한 건 당사자다. 투자하고 받는 건 평판 비즈니스다. 결혼과 비슷하다. 이거 아닌데 하고 느낄 땐 되돌리기 어렵다. 시간과 감정 낭비를 동반한다. 충돌과 출혈이 크다. 신중하게 상대를 골라야 한다. 돈 말고 과거 이력도 보자. 성실한 창업자와 함께 고민하며 오래가는지, 꼬이면 꼬투리만 찾는지. 수익만 생각하는 캐피털 머니를 선택하고선 천사의 배려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다.


돈에는 꼬리표가 없다. 하지만 돈을 운용하는 사람에겐 있다. 잘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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