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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철 Aug 27. 2022

187. 내가 편해야 남도 편하다

2022.08.27

젊은 창업자가 나랑 좀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는 건데.. 잠시 망설였다. 사업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조언하기도 조심스럽다. 하여튼 손님이 올 때까지 시간도 좀 있어서 그러자고 했다.


사업 이야기를 했다. 톤이 셌다. 급했다.. 힘이 들어갔다. 들으며 점점 나도 몸이 굳고 힘이 들어갔다. 내용은 단순했다. 이제 양산을 하고 싶다. 돈이 필요하다. TV 광고를 하고 싶다. 돈이 필요하다. 사람을  늘려야겠다. 돈이 필요하다.


다 했습니까? 단순하게 질문했다. 양산해서 팔 거래처는 있나요? TV 광고를 할 만큼 소비자가 대중스러운가요? 효율적으로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쓸 계획은 있나요? 답을 듣고 또 질문했다.


자금 유치도 이야기했다. 예전보단 쉽지 않을 거다. 현재 현금을 잘 유지하셔라. 제품의 강점은 뭔가? 영업 포인트는 뭔지. 등


시간이 지나면서 톤이 약해졌다. 음도 낮아졌다. 부드러웠다. 그래 지금처럼 이야기하세요. 듣기 한결 편해요. 그 톤과 음정으로 발표하세요. 그럼 상대도 이해하기 편합니다.


예전 처음 펀드 제안 발표를 할 때다. 레슨으로 유명 아나운서를 만났다. 발표가 이틀 뒤라 레슨이 별 의미 없는 시점이었는데.. 장표 순서를 이리저리 바꾸면서 이렇게 말씀해보시라 했다. 신기했다. 대개 자연스러웠다. 오.. 하면서 고맙다 했다. 비용은 많이 줬다.


그날 업체 사장님과 저녁을 했다. 오래오래 만나는 사이가 되어버려서 좀 젊었던 나를 막 대하신 분이었다. 고민이 뭔가 물었다. 난 투명한 사람이라 초조함이 그대로 드러났던 거지. 발표가 있는 데 중요하다, 잘해야 한다. 그랬더니 그분의 조언은.. 표준말 쓰려고 애쓰지 마라 였다. 가장 자연스러운 평소의 말로 하라는.. 말하는 사람이 편해야 듣는 사람도 편하다는 말씀. 맞다. 그래서 좀 어려운 대목에서는 눈 딱 감고 그냥 "제일 편한 선생님" 한테 쓰는 단어, 화법으로 바꿨다. 한 명쯤은 맘 좋은 쌤이 있지 않나. 뭐라도 다 이야기해도 될 것 같은 분.. 이건 공짜 조언이었다.


그날 얻은 두 가지 원 포인트 레슨은 언제나 새기고 있다. 경중을 따지자면 공짜 과외에 더 초점을 둔다.


다음 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거래처와 미팅을 했다고. 어제 내가 추천했던 톤과 음정을 연습해서 소개를 잘했다고. 계속 편안하게 잘 이야기했으면. 스스로 여유를 만드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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