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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철 Nov 20. 2022

198. 좋은 창업자, 소신 투자자

2022.11.20

몇 달 전 만났던 창업자에게 말을 걸었다. 또 한 번 보자고..

그는 휴학 중이다.


그동안 업데이트를 들었다. 참 열심히 설명했다.

모든 걸 주입해주리라, 패기와 기상이 1미터 공기벽을 뚫고 내 전두엽으로 돌진해 왔다.

동영상 강의를 눈앞에서 듣는 듯했다.

말하기만 하고, 듣기만 하고.


잠깐만요,,, 좀 천천히 말해주세요.  

나는 듣고 만 싶지는 않았다. 알고 싶었다.

친구한테 이야기하듯 한번 해 보시라.

속도를 줄이고 톤도 부드러워졌다.

한결 나았다. 비대면 주입식 강의가 직강으로, 또 대화로 바꿔갔다.


듣고 싶은 걸 이야기했다.

결과는 장표에 다 있다. 읽으면 됩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궁금하다.

창업자는 어떤 생각으로 어떤 시도를 했는지.


결과로만 투자 검토할 때도 있다. 서류 채점과 같다.

불쑥 한번 듣고 보고, 수치가 좋네, 몇 점이야.  

다음 시험도 잘 치겠네.

투자할 만하네.. 이럴 수도 있다.

뒷 단, 변수가 거의 파악되고, 투자 경험이 누적된 시장의 투자에 적합하다.


내가 보고 있는 건 초기 기업.

지금 단계에선 어떤 식으로 문제를 풀었는지 더 듣고 싶다.

단번에 풀었는지. 몇 번을 지웠다 썼다 했는지.

잘 찍었건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떤 레슨을 얻었는지.


트레이너 "수 천명"을 모았는 데, 한 단계 더 설명해 달라 했다.

여성만 모은 건지, 30세 이하 위주인지, 강남 지역인지..

의미 있는 카테고리는 무작위 "수만 명" 보다 더 좋다.

그런 고민이 사업의 시작이다. 창업자 역량이다.


돈만 있으면 사업을 잘할 수 있다 한다. 맞다.

많이 듣는 푸념이다.

사업은 돈을 가장 "잘" 쓰는 경쟁이다.

"많이" 쓰는 경쟁이 아니다.


투자자도 자기 업에 충실하다.

경험의 밑거름보다는 제이커브 그리는 데 쓰이길 원한다.

확실히 돈 값 하게.


시장이 얼어붙었다고 한다.

쉬운 시험 문제 시대는 끝났다.

옥석이 가려지는 시기.


사업은, 투자유치는 객관식이 아니다.

지독한 주관식, 개개인의 서술식이다.

그것도 채점자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언젠간 풀리는 날이 온다. 머지않았다.

누군가는 투자를 받는다. 더 많이 받을 거다.


눈 밭을 헤치고 올라오는 새순이 더 뚜렷하게 보인다.

훌륭한 창업자, 소신 있는 투자자에게 오히려 더 좋은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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