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01
시작은 어제 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마곡, 정자 주민이 망원동 사는 장년을 만나러 갔다. 먼 거리를 맛으로 보답하겠다는 말을 믿고. 다음은 분당 제일의 삼겹을 만날 것 같다. 대체로 일관성을 유지하는 토크 중간 "부여"가 나왔다. 가본 기억이 있나 없나.. 그래 내일 가볼까 생각하고 집에 왔다.
당일 나들이에 우리집 나만큼 나이 드신 여성분도 가겠다고. 8시 출발. 멋쟁이 에코백에 책 하나, 아이패드, 에어팟, 안경을 넣고 시동을 걸었다. 부여읍 행정복지센터까지 10:05. 자율주행 레벨 2. 고속도로만 올라서면 편하다. 믿고 간다.
딴생각 중인 조수석 손님에게 말했다. 뭘 먹을지, 어딜 볼 지 좀 검색하시라고. 내비게이션은 이제 도착 시간을 10:30으로 고쳤다. 망원동 그 장년에게 어제 말한 식당을 확인받았다. 광*식당. 행선지를 바꿨다. 10:50 도착. 무량사 아래 비빔밥 집 같다. 그 장년은 허름하다고, 맛은 기깔나다고. 구글맵에서 영업 시작 11:00으로 확인. 비슷하게 도착하겠네. 오케이. 얼마나 맛나나 가보자.
시간이 늘어난 만큼, 부여 시내에서 멀어졌다. IC 나와서도 25분 국도를 갔다. 멋진 식당은 눈에 띄지 않았다. 비슷한 허름한 가게가 몇 있었다. 무량사 제일 가까운 곳. 역시 허름했다. 폭풍 검색으로 비빔밥과 버섯 전으로 정했는데.. 이제 버섯 전은 안 한다네. 버섯구이로 바꿨다. 주인이 버섯구이는 버섯을 단순히 구운 것이라 다짐을 줬다. 오케이.
묵을 먹자는 동행자의 의견도 있었다. 소수의견이라 무시했다. 사람이 어찌 다람쥐와 먹을 것을 다툰단 말인가. 사실 난 묵에 감흥이 없다. 어릴 적 좀 떫었던 기억이 오래가고 있다. 얼마 전 다람쥐도 먹을 것이 없을 때 도토리를 먹는다는 문구를 봤다. 영양가 별로 없어서 란다. 다람쥐는 다이어트 싫어한다.
반찬이 나왔다. 메인 나오기 전에 이것저것 젓가락을 옮기는 건 동행자의 습관이다. 기미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못마땅하지만 절대 말하지 안 한다. 참을 수 있는 일에 하루를 망칠 수는 없다. 적게 말할수록 즐겁게 산다. 대신 나도 한입. 오잉. 맛있구나가 절로 나왔다. 두 가지 묵 반찬도 훌륭했다. 이런 식감이 나네. 좀 더 달라고 하니 좀 더 많이 드리는 데 추가 요금을 달라 신다. 알겠다 했다. 묵요리를 안 시키길 잘했다. 버섯구이도 일품이었다. 적당히 소금간이 베인 표고버섯. 곶감 크기 만한 게 십여 개가 한 접시. 양으로도 충분. 우리집 네 식구는 요즘도 1 가구 1 닭을 먹는다. 남은 건 싸왔다. TV에 나올 만하다 싶다. 만화가가 다녀간 집이다.
바로 옆은 무량사. 대웅전이 2층이다. 양지바른 곳에, 산 그리 깊지 않은 곳에 있다. 단층이 바랬다. 한눈에 오래된 절이다. 시주를 하고 절을 올렸다. 난 딱히 불자는 아니다. 아버지, 자형, 엄마 모두 절에서 보내드려서 왠지 절은 친숙하면서도 어렵다. 숙연해지고.
이제 본격 부여 탐방이다. 다음은 궁남지. 궁 남쪽에 있는 연못이라고. 부여 자체가 편평한 곳, 시야가 트였다. 큰 연못 주위 작은 연못마다 다른 종류의 연꽃인데,,, 4월에 오면 좋겠다.
한옥 마을 카페에서 잠깐 휴식. 가베 한 잔. 보려고 간 책은 접었다. "한 끼 식사의 행복". 이미 맛있는 밥을 먹어 만족하기에.
어딜 갈까요. 아줌마에게 물었다. 정림사지 5층석탑으로 가자시네. 빈 땅에 석탑만 덩그러니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그랬다. 정림사는 당연 없다. 건물은 석불좌상 있는 곳만. 절터 옆에 박물관이 있다. 정림사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 일단 몸도 좀 보호할 겸, 입장했다. 역시.. 기대가 없어야 만족도가 높다. 현대식 박물관. 홀로그램, 빛과 조명. 박물관 자체가 구경거리다. 좋은 선택이었다. 가족 톡방에 사진을 전송했다. 정림사지 5층 석탑도. 둘째가 말했다. 한국사 공부할 때 힘들었다고.. 석탑들이 너무 나와서.. 정림사지, 황룡사지, 석가탑, 하긴 석탑 없는 절이 없지 아마..
또 카페 탐방. 어제 밤늦게 까지 취미생활하다고 잠이 좀 부족했다. 팥빙수가 유명하다는 가게로. 팥빙수도 안 하지만 시끄러웠다. 조용히 나왔다. 길 건너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옆에 안 유명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으로. 기대를 낮추면 만족감은 높다. 오늘만 해도 몇 번인가...
딸기 파르페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부여에 왔으면 낙화암이지 하고 갔다. 어느 블로거는 삼천궁녀 낙화암은 뻥이라고 했다. 좁아서 몇 명 있지 못한다고. 그래도 부소산으로 갔다. 주차하고 몇 백 미터 산을 오르다 내려왔다. 아직 날이 춥다. 무리하면 안 된다. 다음에 또 부여에 올 여지를 남기기로..
오랜만에 떠난 한나절 투어. 날은 좀 쌀쌀했다. 마음은 좀 채워졌다. 사는 게 뭐 있나. 좋은 사람과 즐겁게 이야기하고, 가고 싶을 때 떠나면 되는 거지. 부여는 다시 와야겠다. 햇살 좋은 날, 걸어서 구경하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