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늦은 안부

2025.12.12

by 고병철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간이 차일피일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사랑방처럼 드나들던 친구집. 모든 아이들을 애지중지 보듬어 주시던 어머님을 다시 뵈었다.


음악 시간에나 배우고 부르던 가곡을, 생활 속에서 부르던 민간인은 어머님이 처음이었다. 우와였다.


친구가 군대 간다 해 집으로 갔던 날이 있었고, 그로부터 30하고도 오육년이 더 흘렀다.


대학 시절 내내 기숙사에 살았다. 서울에 자리 잡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가 죄송함을 덮어줄 수는 없다. 마음 깊은 곳에 못 여쭤본 안부 인사가 차곡차곡 부채처럼 쌓였다. 나는 애써 외면하며 체념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몇 달 전,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나는 대만에 있었다. 동생을 보내 정성을 표했다.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심장이 조용히 뛰었다.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에 따뜻한 말씀을 나누지 않으면, 정말 후회하겠다 생각이 들었다. 흔쾌한 답장이 왔고, 시간을 내 주셨다.


조금 긴장되었다.

격을 갖추었다. 좋은 재킷을 꺼내고, 안에는 편안한 셔츠를 입었다.


꽃다발을 준비했다. 카네이션을 중심으로, 오래가는 꽃들로 감싸 드렸다.


“어머니, 많이 늦었습니다.”


서운하다는 빈말 한마디 없이 웃으며 받아 주셨다. 더 미안했다.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인 것 같았다.


어머님은 냅킨으로 종이 장미를 접어 주셨다. 나는 브레스트 포켓에 행커치프처럼 꽂았다.

여전히 다재다능하셨다.

여전히 세련되셨다.

삼사십 년의 기억을 결을 따라 더듬었다.

유쾌했다.

어른이 되어 듣는 어른의 말씀. 달랐다.

죄송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대화에 음식의 맛이 가려졌다.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처음에는 이번 말고 또 뵐 기회가 있겠나 생각했다.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다.

몇 번은 더 떼라도 써서 찾아뵈어야겠다.

받아주시겠지.


그 시절, 어린 중·고딩 우리를 바라봐 주셨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