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역 채용 공고에 지원서를 냈다. 입사 중에도 아는 친구는 없었다. 기존 심사역들은 바빴다. 투자 초짜 산업계 경력직을 돌봐줄 틈이 없었다.
매일 신문을 훑었다. 전화했다. 사장님 통화하고 싶은데요. 왜 그러시는 데요. 투자하고 싶어서요. 그게 뭔데요. 첫 번째 전화를 받는, 대게 어린 그 여자분을 넘어서기 힘들었다. 시작부터 그랬다. 하물며, 잘 투자한다는 건 뭘까? 어려운 문제였다. 물어볼 데도 없는데.
회사도 답답했나 보다. 하루는 선배 심사역이 강의했다. 전투력으론 사내 최고였다. 업체에 일단 들이대고, 투자조건 합의하고, 투심 날짜 잡고.. 그러곤, 투심 전날 찾아간다 했다. 투심 위원들 쭉 만나보니, 다 좋은데 좀… 비싸다. 조금만 깎아주면 좋겠다. (아님 이대로 해볼게요) 그럼, 사장님들이 한배라도 깎아준다고. 그때는 심사역들도 배수 배수하던 때 했다.
지독하구나. 저게 최선인가.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 아닌가. 참 열심히구나.
생각이 여럿 드는데... 그 선배 심사역도 상황마다 달랐을 거다. 선의였을 수도, 막판 밀당일 수도.
이런 상황에 사장님은 어땠을까?
믿어야 돼, 말아야 돼. 이런 생각부터.
그래도 고맙네, 같이 고민하자니. 이런 마음도 있고.
실컷 밀당하고 합의해놓고, 꼴 보기도 싫네.
다시 시작하면, 시간 또 걸릴 텐데,
어차피 몇 배수 그냥 불러본 건데,
좀 내려간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내 그럴 줄 알았지, 일단 받는 다고 하자,
더 좋은 조건 있으면 그쪽으로 가고.
사장님도, 여러 마음이 있었을 거다.
투자를 못하게 되면, 심사역은 시간과 다른 투자 기회를 날린다. 사장님도 시간과 성장 기회를 날린다. 누가 더 애가 탈지는, 누가 더 많이 날려버리는지에 달렸다. 없는 기회를 포장했던 사장님을 빼면, 대게 분명하다.
밀당에서 처음엔 선택지가 많은 쪽이 강자지만, 양자 구도로 좁혀지면, 실패 때 손해가 큰 쪽이 약자가 된다. 플랜 B가 있다 해도, 결국은 양자구도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끌려간다는 느낌을 받기 십다.
좀 유리해지면, 뭔가 건드리고 싶은 곳이 있기 마련이다. 이때다 싶기도 하고,, 상대도 안다.
진짜 신뢰성은 이때 나온다. 처음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은 자연 전해진다.
세상은 돌고 돈다. 한 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같은 듯 다른 위치로 또 만난다.
세상은 좁다. 교만은 입에서 입으로, 소문으로 돈다.
세상도 바꼈다. 작은 일 조차 클라우드에 쌓이고 쌓인다. 오랫동안 기억된다.
정보 불균형은 옛말이다.
세월을 이기는 얄팍한 수는 없다. 좀 변했다 해도, 약속을 지키려려는 의지, 오래가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