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과 일하려면 답답하다. 사소한 부분도 꼼꼼하게 체크한다. 비슷한 걸 몇 번이고 설명을 해 준 적도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설명하기가 제일 어렵다. 설명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느린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빠르다. 진솔한 목소리가, 어설픈 큰 소리를 이긴다.
약 10년 전, 우리 회사의 모든 조합은 총회를 열고, 진행해야 할 안건이 있었다. 매우 중요한 건인데,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기가 만만찮게 보였다. 특히나 내가 운용하는 조합에는 일본의 통신회사가 참여하고 있었다. 모두들 가장 늦게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나는 짐작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기회 있을 때 담당자에게 설명을 했다. 이후 실제로 안건을 조율하고, 총회를 진행할 때, 일본 회사 내부에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국내업체에서는 운이 나쁘면, 담당자는 이해하지만, 상사를 이해시키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임원한테 또 시간이 걸린다. 그 과정에서 돌발상황이 나오고 입장을 바꾸기라도 하면 낭패다.
그 업체는 다른 건에서도, 담당자의 의견이 최종적으로 달라진 적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담당자가 호언장담 한 적이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사와 반드시 커뮤니케이션하고, 임원이 바빠서 시간을 못 잡으면, 도시락 먹을 때라도 찾아가 의견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피드백이, 담당자 개인이 아닌 그 회사의 의견이라고 신뢰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은 배워야 한다. 위임받지 않는 권한을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갑” 회사 담당자가 호언장담 하면, “을”은 따라야 하고, 나중에 상황이 바뀌면 담당자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선의의 사전 정보공유 라도, 미안해해도, 피해는 “을”이 떠 앉는다. 구두 발주에 미리 장비 사고, 재고 확보하고, 인력 잔뜩 뽑았다가 망할 뻔한 회사도 여럿이다. 다음번 거래를 생각해 뭐라고 말도 못 한다.
투자업계도 비슷하다. 내부적으로 절차가 남아있고, 결과가 불확실한데도, 심사역은 자신만만하다. 다른 투자자를 배제하라고도 한다. 돈이 말라 가는 벤처에게 그런 말이 희망이면서도 불안하다. 그럴수록 더 정확히, 상황을, 자신의 역할과 범위를 솔직히 공유해야 한다. 심사역 본인에게도 그게 좋다. 왜냐하면, 오늘의 큰소리가 내일에는 심사역을 옥죌 수 있기 때문이다. 심사역은 성과가 나오는 데 오래 시간이 걸리는 직업이다. 하루 반짝 성과를 누리고 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사이 평판은 쌓이고, 내가 한 말은 언젠가는 나에게 책임을 묻는다.
치열한 경쟁은 속도를 요구하지만, 오래 할 비즈니스라면 신뢰성은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