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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철 Nov 04. 2017

68. 2017 Future Conference

한국 벤처캐피털의 미래

패스트캠퍼스가 주최하는 2017 Future Conference 세션("한국 벤처캐피털의 미래")에 패널로 참가했다. 박지웅 대표 전화에 가볍게 응했는데, 질문지는 무거웠다. 고민했다. 현장에서는 말할 기회가 없어서, 시간이 짧아서 이야기 못한 것도 있다. 내가 생각한 내용을 정리했다.



패스트캠퍼스 박지웅 대표가 사회를 보고, 패널 5명 중 돌아가며 지명해 질문했다. 시장의 변화에 대한 질문부터 이어졌다.


(질문-변화) 한국에 벤처캐피털이 생긴 지가 거의 20년 정도 되어가는 것 같다. 업계에 오래 계셔서 그 변화를 완연히 느끼셨을 두 분께 지금과 약 10-15년 전을 비교한다면 이 산업에서 가장 크게 바뀐 2가지는 무엇일까?


패널 중 투자 15년 이상은 두 명이었다. 다른 패널이 먼저 잘 이야기해 주셨다. 내가 말했다. 15년 전에는 창업자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지금은 다들 젊다. 그때는 밥을 얻어먹는 시기였다면 지금은 내가 사야 자연스럽다. (웃음)


주요 변화는 대형화, 다양화, 선진화다. 우선, 투자 규모는 대형화되었다. 벤처에 투자에 참여하는 엔터티도 다양해졌다. (정확한 용어인지는 모르겠지만) 투자 방법은 선진화되었다. 투자 자금의 수요/공급이 양적으로 많아졌고, 정보의 비대칭성이 약해졌다. 힘의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다.


2000년 초에는 B2B 사업에 주로 투자했다. 납품받는 대기업 구매팀, 연구소 선행연구팀에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좋았다. 지금은 B2C 사업도 많이 투자한다. 물어볼 데가 없다. 사회와 대중의 변화를 통찰해야 한다. 어려워졌다.


투자 초기에는 창업자들이 오너쉽에 관심이 매우 컸다. 최근에는 창업자가 M&A 에 거부감이 적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질문-Legacy) 창업자로 일하다가 벤처캐피털에 오셔서 발견한, 내부에서는 관행으로 인식되어 문제라고 잘 발견하지 못하는데 외부의 시각에서 처음 보았을 때 정말 이상하다고 느꼈던 legacy가 있으신지?


이 질문은 패널 중 창업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주어졌다. 조용히 들었다.


(질문-펀딩) 벤처캐피털의 시작은 펀드 결성인데 한국은 아직 민간 자금이 주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민간 LP를 만났을 때의 경험담과 실제 전략적 목적 없이 수익률만을 가지고 타 금융상품과의 경쟁력을 설명하는 것이 수월했는지?


사회자가 두 분에게 답변을 요청했다. 그렇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나 했는데, 패널이 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금융상품에 투자할 때 수익률로만 투자 여부를 판단하지는 않는 것 같다. 벤처 투자에 관심이 많은 자산가도 실행으로 옮기는 데 주저한다.  IRR이 높아도 5년 넘게 잠기는 걸 싫어한다. 창업자로 성공하신 분들이 참여한다. 벤처 조합 출자가 대중화되려면 벤처로 수익 실현한 경험이 사회적으로 더 쌓여야겠구나 생각한다. 지금은 벤처투자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실제 출자로 이어진다.


(질문-투자 결정) 투자 의사결정에 있어서 국내 많은 벤처캐피털들이 (특히 대형사들의 경우) 특정 투자건에 대해 창업팀이 직접 전달하는 IR에는 참석하지 않고, 정리된 투자심사보고서만을 보고 의사결정권을 갖고 투표하는 경우들이 종종 or 꽤 많이 있는 것 같다. 투자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있어서 문제점이 있다면 어떤 문제들이 있고, 또 바람직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요즘 너무 IR을 잘한다. 교육을 잘 받는다. 한데 IR 잘한다고, 사업을 잘 하느냐는 다른 문제 같다. IR 은 발표자 입장에서도 제한적이고 여러 명이 함께 듣는 심사자 입장에서도 제약이 있다.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만나, 차 마시고 밥 먹으면서 이야기 나눈다. 그러면서 창업자의 전문성, 신뢰성을 평가한다. 또 왜 창업을 했는지, 얼마나 절실하냐를 느낀다. IR을 그런 과정 중 하나의 진행이다.


투자를 검토할 때 투자 의사결정권자들이 직접 창업팀을 평가해서 투자할 수 있다. 또 업체를 더 심도 있게 검토한 심사역을 신뢰하고 투자 결정할 수도 있다. 투자회사의 인력구조, 펀드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질문-투자 이후) 투자 후 사후관리 or Value Add라는 게 실제로 창업자들이 피부로 와 닿을 만큼 도움이 되는지? 된다면 어떤 것이 주로 도움이 되고, 혹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더 나아가 미국의 Andreessen Horowitz처럼 사내에 투자 외 다양한 분야의 인력을 엄청나게 많이 채용하는 것이 최근 몇 년간 미국 VC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졌는데, 한국에서 ROI가 나오는 행위라고 보시는지? 이런 포지션은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판단하시는 포지션도 혹시 있으신지?


다른 패널들이 이야기하셨다. 현장에서 이야기하지 못해 내 생각을 정리했다.


도움은 다양하다. 마케팅을 돕고, 인력을 추천하고,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도움의 본질은 결국 시간을 아끼고, 벌어주는 거라 생각한다. 창업자의 시간은 제일 소중하다. 나는 시행착오를 줄여 불필요하게 소비되지 않게 하고 싶다. 그렇게 확보된 시간을 창업자는 때로는 마케팅에, 때로는 인력 영입에, 때로는 개발에 쏟을 거다.


한국 투자 시장은 크지가 않다. 전문 분야에만 투자할 수는 없다. 점차 Specialist가 Generalist가 된다. 그래도 심사역이 전문 분야가 있으면 시장에 진입하기 유리하다.


(질문-벤치마크) 한국의 벤처캐피털 모델은 미국을 자연스럽게 벤치 마크하면서 따라가고 있는 듯한데, 다른 규모의 경제 구조와 규모를 가진 미국이나 중국의 전통적인 벤처캐피털 모델이 한국의 적절한 벤치마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혹시 한국 규모에 더 잘 맞는 벤치마크가 될 만한 다른 나라가 있는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 전에 발언 기회를 요청했다. 늘 고민이 많았던 문제다.


KTB는 2000년 중반부터 중국 벤처에 투자했다. 성과도 매우 좋았다. 2006년 경 중국기업에 투자했다. 그 회사는 엘리베이터 스크린에 디스플레이 광고사업을 했다. 6개월 간 수백%의 수익을 올렸다. 국내에서는 그런 회사에 투자했다 실패했던 모델이다. 중국은 동성애 사이트(남성 동성애 폰데이팅 사이트 블루드 2014년 $3억가치로 $3,000만 투자유치), 여성 사이트(리엔리엔 KTB 투자) 만 해도 트래픽이 엄청나다.


같은 사업이라도 한국과는 달랐다. 사업의 크기뿐 아니라 성공과 실패 자체가 달랐다. 그 이유를 나름 생각해봤다. 여러 책에서 근거를 찾아봤다. 그건 일단, 규모에서 시작된다. 사회의 혁신 속도가 규모와 Linear 하지 않다. 도시의 인구가 10배 많으면 혁신은 17배 빠르다. 50배 크면 130배 빠르게 확산된다. 인구 500만 도시에 사는 사람은 10만 도시 사람보다 세배 창의적이다 한다. 시장이 크면 사업 기회가 다르다. 규모 자체가 룰을 바꾼다.


미국이나 중국에서 성공한 모델이 국내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국내에서 잘 안된다고 해외에서도 안될 거라고 짐작하지 말자. 사업기회를 놓친다.


(질문-Exit) 오신 분들이 대부분 초기기업에 투자를 많이 하시는 분들인데, 만나는 창업자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M&A를 통한 Exit 가능성에 대해서 실제로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시는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당위성 측면에서 생각하시는지? 혹시 가능성이 있다고 느끼신다면 그 힌트가 될 만한 사례들이 있는지? 


다른 패널분들 말씀이 좋았다. 따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내 의견을 덫붙이자면...M&A 대상이 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사는 사람이 없는데 그걸 목표로 할 수는 없다. 계속 기업으로 가는 와중에 얻는 기회다. 사업이 계속 성장할 때,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고 공공히 유지될 때, 대체 불가능할 때, 이럴 때 원하는 M&A 제안이 온다. 만약 그런 기회가 왔다면, 현실적으로 판단하라고 말씀드리겠다.


(질문-회사 구조) 최근 대규모 출자사업으로 인해서 많은 심사역들이 독립을 선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부분이 주식회사 구조로 되어 있는 한국 벤처캐피털의 경우 좋은 인력을 retain 하기에 적절한 구조가 아니지 않을까? VC라는 업의 본질에 더 적합한 구조는 LLC 형태가 아닌지? 


패널 한분이 이해관 계일치 측면에서 LLC가 좋다 하셨다. 나는 주식회사에서만 일했다. 어느 쪽이 좋은 지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주식회사가 불리한 경우를 안다.


만약, 상장된 주식회사라면 대중들과 규정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인사이트와 많은 시행착오로 쌓은 지식이 공개될 수 있다. 비상장회사에 비해 불리하다.


오너가 경영하느냐 전문경영인이 하느냐도 다르다. 경영진의 성과를 년단위로하면 투자기간이 긴 벤처투자와 결이 맞지 않다. 단위 기간당 평가를 좋게 받으려고 수익을 굳이 실현해야 한다. 더 기다리면 많은 수익이 올 수 있는데, 포기해야 하는 때가 있다


벤처 투자 전략에 따라, 각사 사정에 맞게 구조가 필요하다.


(질문-구주거래) 미국 Sequoia Capital의 파트너 중에 한 명이 일부 미국 VC들이 Pre-IPO 구주를 거래하고 그 회사의 로고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놓는 행태에 대해서, 창업자와의 직접적인 교류 없이 이뤄지는 트레이딩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면서 이런 것을 Logo Collecting이라고 비판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벤처투자 성공의 결과물은 수익과 인적 네트워킹이다. 창업자와 동반 성장해 수익을 올린다. 또 그렇게 형성된 좋은 네트워크, 신뢰관계는 향후 좋은 투자 인프라다.


창업자와 교류 없는 구주거래는 동반성장이라는 벤처투자 본질과 멀다. 자금의 운용이라는 의미만 있다. 만약 구주거래가 창업자와 관계를 형성하는 도구라면 의미 있다.


(질문-인력채용) 벤처캐피털의 채용에 대해서는 베일에 쌓여있는 경우가 많다. 소수의 인원을 가끔 뽑기 때문인데, 벤처캐피털리스트를 채용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유심히 살펴보시는지? 주니어로 들어와서 투자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과 충분한 사회 경험을 쌓고 파트너급으로 바로 합류하는 경우 등에 있어서 VC 회사를 만들고 조직구조를 세팅하는 관점에서 어떤 부분들을 더 선호하시는지?


벤처투자는 같은 경우가 반복되지 않는 비정형 사업이다. 통찰력은 경험을 통해 체득한다. 실제로 해봐야 한다. 사회 경력이 있는 파트너급 시니어라도 현장 경험을 해야 한다. 1억 투자하는 것, 10억 투자하는 것, 100억 투자하는 것, 다 같은 투자가 아니다. 투자 포인트, 고민이 다르다. 말로, 책으로 얻을 수는 없다. 몇 달이던 몇 건이던 실행하면서 체득한다. 해봐야 안다. 조급해지 말자 그런 자세가 좋다.


(질문-경쟁) 모든 회사들은 경쟁환경에서 경쟁우위를 요구받고, 이는 하나의 회사인 벤처캐피털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좋은 벤처캐피털을 만들기 위해 타 벤처캐피털들과 경쟁 관점에서 신경 쓰고 있는 점들이 있다면 어떤 점들이 있는지? 더불어, 지금 한국에 벤처캐피털이 100여 곳 정도 등록되어 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끼시는지 아니면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느끼시는지?   


2000년 벤처캐피털이 147개사 였다. 2006년 104개, 2017년 초 118개였다. 2006년 이후 89 사가 새로 생기고, 75개사 말소되었다. 한국 벤처캐피털 2017년 회원 수첩에서 명단을 봤다. 103개사 중 2007년 이전 설립된 창투사가 53개였다.  이중 47개사는 2000년에도 있었다. 시장에 자리잡았다는 거다. 그외 많은 회사가 생겼다 사라졌다.


자본금 최소 요건도 낮아졌다. 앞으로 투자사가 많이 생길 거다. 비슷하다면 신규 투자사는 경쟁력이 없다. 뚜렷한 철학과 시장 통찰을 가진 특색 있는 투자사만 살아남을 거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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