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속도가 주는 착각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운전할 때 빨리 가려고 속도를 높이면, 금세 목적지에 닿을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신호에 더 자주 걸리고, 위험은 커지고, 마음은 더 불안해진다. 서두른 만큼 손해를 본다. 공부할 때도 비슷하다. 단기간 벼락치기로 속도를 내면 성과가 나는 듯 보이지만, 며칠만 지나도 머릿속에서 흩어지고 만다. 쇼핑도 다르지 않다. 세일 기간이라는 말에 ‘지금 당장 사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기지만, 돌아와서 보면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후회를 안겨준다. 그때마다 우리는 깨닫는다. 속도는 이익을 주는 듯하지만, 실상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내 삶도 그랬다. 증권회사에 몸담은 지 어느새 13년. 말단 사원에서 차장까지 오르는 동안 나는 누구보다 부지런히 달렸다. 성과가 전부인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자부심이 있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와 줄 거라 믿었고, 실제로 성과가 보일 때마다 스스로 기특하게 여겼다.
그러나 버텨낸 시간만큼 내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처음엔 단순히 성실함이었지만, 어느새 강박이 되었다. 나는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믿었고, 다른 사람보다 먼저 인정받는 것이 기쁨이라고 여겼다.
“참 일을 빨리 처리하네.”
“손이 참 빠르네.”
사람들이 건네는 그 말들이 내 하루를 지배했다. 처음엔 뿌듯했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 같았으니까. 하지만 곧 알았다. 그 말은 칭찬이라기보다 족쇄였다. 더 빨리, 더 완벽히, 더 치열하게. 속도의 굴레 안에서 나는 점점 옥죄여 갔다. ‘빠르다’는 말에 기댄 채, 브레이크 없는 수레바퀴처럼 내리막을 달리고 있었다. 멈출 줄도 모르고, 멈출 수도 없는 채로.
처음에는 성취감이 나를 지탱했다. 야근을 마치고 사무실 밖을 나섰을 때의 밤공기는 상쾌했다. 뿌듯함에 취해 더 열심히 달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달라졌다. 같은 야근, 같은 성과였는데 마음은 점점 공허해졌다. 공기는 차갑게만 느껴졌고, 성취의 기쁨은 짧게 스쳐가고 허무가 더 길게 남았다.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속도가 내게 준 건 성취가 아니라 착각이었다는 것을. 빨라야 한다는 믿음은 내 몸과 마음을 소진시켰고, 내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빠름이 곧 능력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내 삶을 허물어뜨리는 무게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빠른 게 좋다. 효율적이다. 경쟁에서 이긴다.” 그러나 빠르다고 해서 다 옳은 건 아니다. 오히려 빠름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을 놓치게 한다. 빨리 달리느라 주변의 풍경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외면하게 한다.
나는 이제 안다. 속도는 삶의 본질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방향이고, 뿌리다.
“빨리 자란 나무는 쉽게 꺾이지만, 느리게 자란 나무는 뿌리가 깊다.”
삶도 그렇다. 뿌리가 깊어야 꺾이지 않는다. 그리고 뿌리를 내리는 데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속도에 쫓기고 있다면, 잠시 멈춰 보길 권한다. 속도를 줄인다고 해서 실패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멈춤 속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숨 가쁘게 달리는 사이 잃어버린 것들, 천천히 걸을 때만 만날 수 있는 풍경들.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깊이를 배운다.
“다음 글: 〈멈추면 잃는 줄만 알았다〉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