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채워도 비어 있던 날들

by 정연

3. 채워도 비어 있던 날들


내 성과가 인정받는 날, 곧 성과급이 나오는 날이었다. 돈도 물론 좋았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돈의 액수보다도 내 능력이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듯한 기분이 더 달콤했다. 몇 년 동안 나는 그 하루를 기다리며 살았다. 성과급이라는 보상이 내 노고를 증명해 줄 거라 믿었고, 계좌에 찍히는 숫자가 곧 내 존재감을 말해줄 거라 생각했다. 낭만만 좇으며 살아가는 건 무책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성과급을 앞두고는 늘 팀장과의 면담이 있었다. 짧지만 묘하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올해 고생 많았고, 이번엔 얼마를 받게 될 거야.”


팀장의 입에서 금액이 언급될 때면 민망하면서도 기대가 뒤섞였다. 그 금액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내가 우리 팀에서 어떤 존재인지, 본부는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그 숫자 하나에 담겨 있는 듯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면담 자리에서 자주 실망을 마주했다. 약속되었던 금액은 언제나 줄어 있었고, 설명은 늘 모호했다. 배분의 순간마다 어김없이 서운함이 남았다. ‘올해는 힘들었다, 회사 사정이 그렇다’는 말들이 되풀이되었다. 상사도, 나도 결국 같은 굴레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돈이 내 삶을 지탱해 줄 거라 믿었지만, 오히려 돈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성과급 시즌이 다가오면, 평소에는 평범했던 팀 분위기에도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허물없이 지내던 동료들 사이도 그 순간만큼은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졌다. 누가 얼마를 받았는지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눈빛 속에는 이미 눈치작전이 오가고 있었다. 웃으며 대화를 이어가다가도, 마음 한구석에는 서운함이 스며들었다. 속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리듯 비교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 사이에 미묘한 벽이 생겨났다. 돈은 그렇게 관계마저 흔들어 놓았다. 나는 그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고, 때로는 그 속에 내가 서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성과급이 곧 내 가치를 증명한다고 믿었다. 계좌의 숫자가 늘어나는 건 분명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갔다. 채워지는 듯했지만 늘 비어 있었다.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곧 삶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다음 날,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았다. 어제의 서운함은 마음 한켠에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프로답게 다시 일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동료들도 더 이상 성과급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거웠다. 나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왜,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 거지? 나한테 도대체 뭘 원하는 거지?”


열심히 일했고 최선을 다했으니, 마땅히 알아봐 줘야 한다는 논리로 나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건 논리가 아니라 집착이었다. 분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뒤엉켜 나를 지배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어제의 면담이 재생되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모니터를 바라보았지만, 마음은 공허한 메아리만 가득했다.

그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들었다. 결국 나는 다시 일에 매달렸다. 일이 곧 돈이었으니까. 돈이 내 가치를 증명한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점점 기계처럼 일하고 있었다. 손은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렸지만, 마음은 메말라 있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성과는 순간의 만족을 주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을. 숫자는 쌓였지만, 내 안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내가 진짜 바랐던 건 돈이 아니라, 나의 노력이 존중받는 순간, 그리고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진짜 충만함이었다.


“다음 글: 〈속도가 주는 착각〉에서 계속됩니다.”

이전 02화2. 성과가 전부인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