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내가 걷는 곳이 곧 길이다
증권사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길 위에 서 있다고 믿었다.
연봉과 직함이 보장하는 안정된 삶, 성과로 증명되는 자존심….
사회가 정답이라 말하는 길을 따르며, 나는 성공의 길 위에 있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러나 그 길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회의실 안에서는 늘 성과 보고가 오갔다.
“이번 분기 실적이 왜 이렇게 떨어졌지?”
“다음 주까지 계약 마무리하세요.”
사람들의 시선은 늘 숫자에 꽂혀 있었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일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시계 톱니 속의 작은 부속품처럼,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겉으로는 안정적이고 반듯한 길 같았지만, 속으로는 점점 길을 잃고 있었다.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 좋은 회사를 왜 버리냐?”
“계약직으로 돌아가면 후회할 거야.”
많은 충고와 시선이 나를 붙잡았다. 모두가 틀린 길이라 말했지만, 정작 그 길 위에서 나는 오히려 숨을 쉴 수 있었다.
아침마다 맡게 되는 책 냄새, 조용히 공부하는 학생들의 집중한 얼굴, 대출 데스크에서 오가는 소소한 인사들. 사소한 것 같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다시 회복하게 했다.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책을 건네줄 때, 학생이 건네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이전의 성과급보다 더 오래 마음을 채워주었다. 세상은 작아졌지만, 나는 오히려 더 넓어졌다.
돌아보니 길은 애초에 정해져 있지 않았다.
누구도 내 인생의 지도를 대신 그려줄 수 없었다.
증권사에서의 길은 마치 곧게 뻗은 고속도로 같았다. 빠르지만, 그 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도서관에서의 길은 오솔길 같았다. 느리지만, 매일의 발걸음이 풍경을 만들어주었다. 길은 선택지가 아니라, 내가 직접 걸으며 만들어내는 발자취였다.
길은 내가 걸어야만 생겼다. 내가 멈추면 사라졌고, 다시 걸으면 또 이어졌다.
그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들이 정답이라 말하는 길을 붙잡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나만의 길 위에서는 조금씩 선명해졌다.
혹시 당신도 지금, 남들이 정답이라 말하는 길 앞에서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연봉이 보장되고, 직함이 주어지고, 사회가 인정하는 길이 눈앞에 놓여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당신의 길은 아닐 수 있다. 반대로, 남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길 속에서 진짜 나다움을 찾을 수도 있다.
정답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내가 걷는 그 자리, 내가 발로 딛고 있는 그 길. 그곳이 바로 내 길이다.
길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매일 조금씩 그려가는 나만의 지도다.15. 남이 웃어도 내가 웃는 길
사람들은 물었다.
“연봉 높은 증권회사를 나와서, 과연 삶이 유지될 수 있겠느냐고. 자존심은 괜찮겠느냐고.”
이해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일하기 전,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억대 연봉을 받아도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고, 압박과 불안이 하루하루를 갉아먹었다. 의미 없는 풍요 속에서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제라도 깨달은 것이 다행이다. 지금은 신입사원 때보다도 못한 월급을 받지만, 나는 안다. 버티다 보면 언젠가 날개를 달 수 있다는 것을. 내 경험 중 어느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경험이 곧 재산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본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계속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언젠가 그들이 비웃는 그 길에서, 나는 진짜로 웃고 있을 거라는 것을.
“다음 글: 〈작은 선택, 큰 울림〉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