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뿔 Jan 10. 2021

궁량

생각의 부피

궁량이라는 말은 순 우리말입니다.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깊이 생각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비슷한 말로는 궁리가 있지요...

이리저리 따져보고자 하면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고 각각의 관점에서 바라본 상황을 특정한 기준점에서 통합하고 평가할 수 있는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들 즉 정보들이 필요합니다.

궁량한다는 말은 자신이 가진 사고력과 정보량을 합친 말이라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궁량이라는 말에는 생각의 공간이자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크기라는 말이 포함되어있지 않을까하는 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간적으로 보면 생각의 부피를 궁량이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

우리가 왜 살이 찌는가 라는 어리석은 질문에 정말 흔한 대답으로 '많이 먹어서'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먹을 만큼 먹게 되면 배가 불러서 못먹게 되는데 이를 포만감지수라고 한다지요

포만감이란 결국 내가 필요한 만큼 먹었을 때 뇌에서 우리에게 정지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이해해봅시다.

이 포만감지수 이상을 먹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면 다시 물을 수 밖에 없습니다.

포만감이라는 빗장이 있는데 왜 살이 찔까요?

그 이유는 이 포만감이라는 것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확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체중이 유지될 수 있는 포만감 지수가 있을 텐데 그 지수가 높아지는 이유는 생화학적으로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잦은 폭음 폭식이 그 수치를 올린다는 것이 정설일 것입니다.

자주 한계치를 넘어서다보면 기준이 상승하는 것은 포만지수 뿐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근육도 한계이상을 쓰게 되면 벌크업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겠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은 어떨까요?

요즘 엄청나게 많아진 정보의 홍수속에서 우리의 궁량은 얼마만큼일까요?

위에서 저는 궁량이 생각이 펼쳐지는 공간이자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크기라고 혼자만의 정의를 했는데요 이런 의미에서 장차 내가 가질 수 있는 궁량의 최대치는 기존의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정보의 양과 내가 세계 및 사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호기심, 그리고 장차 나의 목표에 의해 요구되어지는 정보의 양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미래의 궁량 = 기존 보유 정보량 + 호기심의 크기 + 목표에 의해 결정되는 정보 필요량


******


이따금씩 우리는 머리속에 담고있는 생각을 끄집어내려 하는데 곤란을 겪게 됩니다.

그 곤란함의 첫째는 아무래도 망각일 것입니다.

자주 쓰지 않고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리 중요하다고 느껴지지 않으면 일상의 다급한 일들에게 우선순위가 밀려서 의식밖으로 퇴장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기억들을 이따금씩 필요로 할때 무언가 내가 기억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 내용을 떠올릴 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망각의 늪에 빠진 것입니다. 이때 무언가를 더 오래 기억하고 싶다면 더 많은 관련 개념을 기억하면 됩니다. 특별히 자극적이고 생애주기적인 사건과 연결지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억해야 할 사건들이 많다면 그것도 곤란해 지게 됩니다.


둘째 망각이 아닌데 기억을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을 끓이기 위해 가스밸브를 열고 된장찌개를 끓입니다. 아니 라면을 끓인다고 합시다.

조리가 끝나고 밸브를 잠그고 라면을 먹습니다. 양치하고 다른 일을 잠깐 하다가 볼일 보러 나왔는데

가스밸브를 잠근 기억이 가물합니다. 내가 잠근 기억이 있긴 한데 이게 오늘 잠근 기억인지 어제 인지 확실치가 않은 겁니다. 이런 경우를 간섭이라고 합니다.  

간섭의 경우는 비슷한 개념이나 사물을 한꺼번에 또는 주기적으로 입력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잊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딱히 특정한 하나의 개념을 골라내는 것이 어려운 경우인 겁니다.


사실 공부를 해보면 망각보다도 더 리스크가 큰 것이 간섭입니다.

적당히 공부를 하면 80점은 받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받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간섭현상때문이지요.

아예 모를때는 조금만 공부해도 능률이 쏙쏙 오릅니다.

어느정도 알게 되면 이미 알고있는 것과 새로 알게된 것이 서로 충돌을 일으킵니다.

꾸준히 오랜 시간에 걸쳐 받아들이게 되면 간섭이 적지만 갑작스럽게 한꺼번에 쏟아부으면 간섭현상이 두드러질 것입니다. 


망각과 간섭의 함정을 피해서 우리의 생각을 넓혀나가는 방법은 지식의 원천을 파고드는 것입니다.

하나하나의 지식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원을 이해하고 그 사실에 얽힌 에피소드를 살펴봄으로써 더이상 유사품에 속지 않게 되는 것이랄까요....


사물이나 관념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어휘력이 됩니다.


우리의 사고는 언어로 되어있으므로 우리가 아는 언어에 의해 우리의 사고는 제약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언어가 상기시키는 개념만큼 무수한 사상들이 그 언어로 해서 저장되고 환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휘의 양은 정보의 량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단어를 알게되었다고 했을 때 그 단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 단어를 포함하는 세계의 많은 체계가 그 단어로 해서 따라 나올 것입니다.

이미 내가 알고있는 분야라고 한다면 그 단어자체가 끌고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은 내가 알고있는 것과 중복될 수 있으므로 새로운 단어가 나의 지식정보체계속에 소화되고 또 다른 방향으로 탐구가 진행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분야라고 한다면 그 단어를 이루고 있는 문장안에서 또 다른 모르는 부분을 계속 발견하게 됨으로 해서 우리는 결국 탐구를 멈추게 될 것입니다.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이 우리의 인식구조입니다. 알아가는 재미와는 반대방향인 겁니다.


*******


정보의 홍수시대를 사는 우리는 일정량이상의 정보에 노출되면 사고가 멈추는 지점이 있는 것같습니다.

궁량이 가득차면 두뇌의 활동이 둔해지고  잠이 오게 됩니다.

비슷하지만 같지 않은 것을 구분해야 할지 한데 묶어야 할지에 대해 이러한 고민 자체도 필요한지 어떤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고 그 판단에 대한 판단이 무한반복되면서 나의 궁량은 포만감을 선포하고 사고가 멈추게 됩니다. 


생각은 하지만 앞으로 나가는 생각이 아니라 사고의 틀에 갖혀서 제자리에서 뱅뱅 도는 것이지요....

 요즘과 같은 변화의 시대에서는 변화하는 추이를 쫒아가는 핵심은 빠른 정보습득 및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지식정보의 적절한 업그레이드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궁량이 커져야 합니다.

생각의 판을 키워야 하고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정보의 양도 커져야 합니다.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면 근육을 키워야 하는데 그 근육이라는 것의 기본은 어휘인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어휘,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단어의 양은 많은 책을 읽어서 늘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거나 영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단어의 양도 적지는 않겠지만 많은 문장을 통해서 단어의 쓰임과 의미를 파악하고 사고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연마하는 것에는 독서를 따라 올 수 없습니다.


사람을 만나서 터득할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의 세월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영상은 조각난 일부분의 지식이므로 생각의 지도를 통합하는데 무리가 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짧은 시간에 작가가 살아온 세월과 사건들을 종합적이고 압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무엇보다도 작가는 독자들이 자신의 글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미디어시대에 온갖 정보를 동영상으로 얻을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젓가락과 싸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