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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뿔 Dec 09. 2020

젓가락과 싸우다

늘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다가 인제는 장을 보고 찬을 만드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찌개를 끓이던 야채를 볶던 아직은 손에 익지 않아서 머리속의 그림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물은 끓고 있는데 아직 야채를 다 썰지 못했다던가 쏘세지 야채볶음을 하는데 양파를 먼저 볶지 않았다던가 빠르게 끝내고 먹고싶은 마음에 급하게 서두르다 보면 늘 젓가락 챙기는 게 일이 된다.

나무로 곱게 다듬어서 끝에는 꽃문양까지 새겨져 있는 젓가락들...

스테인레스 젓가락보다 차갑지도 않고 후라이팬을 긁을때 신경이 쓰이지도 않고 왠지 나무라서 더 좋기는 한데

저마다 무늬가 다르고 길이가 달라서 짝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일이란 것이 늘 그렇듯이 바쁘면 조그만 일에도 원망이 앞선다.

특히나 라면이 끓고 있으면 불기전에 어서 먹어야 하는데 .......

젓가락을 챙기다보면 많지도 않는 젓가락을 다 뽑아 보아야 짝을 맞춘다. 

나이 오십을 넘겨서도 못 맞춘 짝인데 밥먹을 때마다 짝을 챙기게 생겼냐면서 

대부분의 젓가락을 선물해준 큰 누님에게까지 원망이 갈 판이다.


한 날은 설겆이를 하면서 늘 하던대로 수저통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꽂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꽂을 때 짝맞춰 놓으면 급할 때 버벅거리지 않아도 될텐데.....'

아! 나는 젓가락과 싸울 일이 아니었다.

끝까지 마무리를 잘하지 못하는 습관을 고치면 될 일을......

마지막으로 헹굴 때 젓가락의 모양을 보고 맞춰서 수저통에 꽂아두었다.

그러고 나니 더이상 젓가락과 싸울 일이 없었다.


젓가락을 꽂을 때 짝을 맞춰서 꽂듯이 우리가 새롭게 알게되는 사실도 제 자리에 넣어서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우연히 향기를 맡게 되면 그 사람을 기억할 때마다 향기도 떠오른다.

향수회사가 잘나가는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 한다. 

첫인상은 참 중요하다... 그 중요한 첫인상을 뒤섞어서는 안되겠다.


젓가락을 섞어서 꽂아둔 것처럼 소중한 정보를 아무렇게나 머리속에 담다보면

출력할 때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미 알고는 있는데 머리속에서 끄집어내기 어려운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어설피 알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엉뚱한 바구니에 담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사실들과 혼선이 생겼을 수도 있고 특정한 하위 그룹에 넣은 것을 잊고 고려대상에서 배제해 두기도 한다.

특히 편견이나 선입관은 잘못 꽂힌 젓가락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설겆이 할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는 은근히 사물에 감정을 이입하는 버릇이 있다.

툭하면 사이가 멀어지는 차량네비게이션과의 관계에서도 네비의 멘트에 집중하지 못하고 나만의 생각에 빠졌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는 공연히 네비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물론 네비의 잘못도 없지는 않다 ㅎ)


어제는 멀쩡하던 무선 주전자가 갑자기 스위치가 먹통이 되어서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오랫만에 커피를 마실 때마다 가스 불을 켜고 끓을 때까지 지켜보려니 참으로 답답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새 무선주전자를 구입해 놓고 

도대체 이놈이 왜 이렇게 무단히 속을 썩이나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주 물을 달인다고 무선주전자 가득 물을 채우고 끓어도 쳐다보지 않아 넘쳤던 일이 두어 번 있었다.


코로나사태로 혼자 있는 날이 많아지니 이제는 사물과 다투게 생겼다. 

하지만 사물이 나와 대립하지는 않는다.

사물과 세상에 대한 나의 소망이 빗나갈 때 그 원망이 사물로 향하는 것이다.

혼자 집에 산다는 것은 내가 둔 대로 모든 사물이 멈춰있다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는 원망할 사람도 기댈 사람도 없다. 

기억에 나지 않더라도 내가 둔 자리에서 그 사물은 움직인 적이 없다.

변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이고 감정일 뿐이다.

우리의 감정도 막 설겆이 끝낸 젓가락처럼 짝맞춰서 제자리에 둘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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