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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뿔 Feb 06. 2021

담배 끊는 법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 담배를 끊을 수 없다!

올해도 벌써 한달을 넘기고 구정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새해라는 의미가 아직은 유효할 때 금연에 도전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처음 시도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대체로 한두번의 실패를 경험하셨을 것이고 

그냥저냥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시는 분들도 있으리라고 짐작합니다.

저 또한 담배를 피우다가 끊은 사람으로써 담배를 끊은 방법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담배를 끊는 것은 1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20년을 끊었다가도 다시 피우게 되면 담배를 끊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또, 한 번을 끊어서 평생을 갔다고 해도 담배에 대한 부자연스러움과 다시 피우게 되어 비웃음을 사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으로 살았다면 진정 담배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막상 담배를 끊은 순간부터 부딪히는 어려운 점은 마음의 평정이 깨어질 때 습관적으로 담배에 의지하던 버릇입니다.     

배가 부른 뒤에 담배가 그리워지는 것은 오히려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던 마음이 괜한 짜증나는 일을 당할 때 마다 익숙해져 있던 담배에로의 탈출(폐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가슴깊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담배연기를 바라보면서 가라않는 자신의 마음을 느끼는 것)을 포기하여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역시 담배는 너무 끊기 어려운 가봐 이 글도 다 읽어봐야 뻔하겠어..’라는 애연가의 안도의 한숨이 들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쉽게 생각하다가 결국 담배를 끊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것보다는 처음에 어렵게 생각해서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이 진정 담배를 끊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네 마음은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따라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움직입니다.

기쁨으로 접근하다가 우울해지고 슬퍼하다가 기쁜 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기쁘니까 무엇을 하고 우울하니까 무엇을 한다는 식으로 그러한 마음에 대응하는 것은 쉽게 다치는 자신의 마음을 보상회로에 의존하여 통제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입니다.     


무언가 채워지지 않거나 기대한 것이 무산되었을 때 끽연가는 속으로 중얼거리게 됩니다.

'지금 내가 화가 나니까 담배를 피워야지 담배를 피우면 마음이 가라앉으니까!'

담배를 끊고 나서는 여기에 다시 속말이 추가되지요.


‘아 담배를 피워야 하는 타이밍인데.... 묽어진 피가 니코틴을 원하는데....그런데 담배를 끊었잖아.......그럼 뭐로 달래지?’     


이 때 간식으로 대처하였다면 살이 찔 것이고 술로 바꾸었다면 폭주하게 될 것이며 도박이나 여색 쪽으로 기울면 가세 기울고 신세 망치기 딱 좋을 것입니다. 결국 어떤 무엇이 되더라도 담배를 피우는 것을 유지하는 것과 동일한 종류의 보상을 지속적으로 채워주어야 하는 마음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담배를 피우던가 아닌가에 지속적으로 영향받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언젠가는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에게 되물어 볼 것입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 더 이상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보상하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다짐한다면 .....


아마도 유쾌한 기분이 줄어들 것입니다. ㅡㅡ;;


아무래도 세상사는 기쁜 일보다 짜증나는 일이 많고 되는 일보다 안되는 일이 많으므로 일일이 마음먹은 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 속에서 그 나마의 위안거리도 스스로에게서 박탈해버렸으니 묘한 상실감에 사로잡힐 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그 보상이라는 것이 결국은 하나의 반복적인 습관과 같은 것임을 이해한다면 마음의 평형을 잃어버리더라도 곧바로 균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알고보면 바로 - 이런 때가 위기입니다.     

시일이 지나면서 담배를 끊었다는 성취감도 그 강도가 약해지고 담배를 피우는 동료나 상사의 늠름한 모습을 보면서 괜히 끊었다는 자괴감이 들 수 도 있습니다.     

생각이 기울면 마음이 쏠리는 법입니다.     

안피워야지 하고 마음을 다 잡으면 피고싶은 마음이 더욱 절실해지죠.

생각이 기울어서 그 쪽으로 생각이 미칠 때 무작정 억제하는 생각은 그 생각에 불을 붙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음의 재료는 하나이므로 하나에 점유되어있을 때는 다른 마음으로 바꾸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해서     

어설프게 차단하다가 더 큰 유혹에 갈등하기보다 생각이 기우는 것을 보고 알아차리시길 권합니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괭이로도 막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것은 바로 마음의 성질을 보고 하는 말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음의 움직임에 민감하면 수준이하의 감도에서 느끼고 대응하므로 억제하는 노력이 배제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문득 일어납니다.     

이 경계에서 나는 왜 그 순간에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나에게 떠올랐는지 지켜보게 됩니다.     

지켜봄과 동시에 나는 마음의 균형을 회복해버립니다.

담배를 성공적으로 끊은 마음의 루틴인 겁니다. (실연이나 잊고싶은 추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매우 짧지만 느린 슬로우 모션으로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미 형성되어있는 여러 가지의 틀이 있지요.     

자극과 반응의 틀은 보상과 제재, 상징과 은유로 인하여 복잡하게 전개되지만 

자신의 내면을 곧바로 들여다보면, 그래서 솔직해지면 몇 가지의 단순한 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말하고 웃고 대답하고 물으면서 나의 마음속의 움직임을 느껴본다면,

특히 탐욕과 자존심, 분노와 두려움, 외로움과 그리움, 상실감과 식상함등 다양한 차원에서 움직이는 마음의 궤적이 점차로 나와 바깥이라는 이분법으로 보여지기 시작하고 나의 안에서 움직이는 미묘한 마음의 흔적이 결국 바깥의 영향이거나 바깥을 의식한 것(바깥에 나를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와 바깥의 세계사이에는 경계가 놓여있고 그 경계에서는 역동적인 자극들이 쉴틈없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조용함이나 심심함이라고 느끼고 있다고 해도 쉴틈이 없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때문에 마찬가지로 역동적입니다.)

     

자극은 알아차려지든 알아차려지지 않든 나에게 수용됩니다.

수용된 자극은 내가 멈칫하는 사이에 여러 단계를 뛰어넘어 충동의 수준으로 팽창됩니다.

초기의 미약한 자극에 괜찮겠지 라는 마음이 머뭇거리게 만들고 그 사이에 충동은 점차 힘을 얻습니다.

이제는 욕구가 앞서게 됩니다. 

여기서 조금 더 진전이 되면 행위를 해서 그 결과로 보상을 주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담배를 어떻게 구할 것인지 고민이 시작되죠.

구입루트를 머릿속에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여서 뿜는 상상이 머리를 채웁니다.

자신은 담배를 끊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상을 억제하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담배가 없어서 꽁초를 찾느라고 집안 곳곳을 헤집어본 사람은 이 말을 이해할 것입니다.)


     

결국 충동의 수준까지가 문제입니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은 충동의 수준에까지 마음을 허용해놓고 억지로 참기 때문에 하루하루 고통스럽고 다른 보상을 바라게 되며 결국은 유혹에 넘어가서 처음의 뜻을 어기게 된다는 것이 포인트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이해한다면 담배를 끊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나의 몸은 나에게 여러 가지 신호를 보냅니다.     

확연히 느껴지는 신호(배고픔이나 상처에 따른 통증)는 즉각적이며 명백합니다.     

따라서 밥을 먹던지 아픈 곳을 쓰다듬던지 한다.

(물론 배고픔에 대한 즉각적인 행동이 아닌 심리적인 허기에 대한 보상심리로 밥을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외로움이나 그리움 같은 미묘한 마음의 결핍의식은 

정확한 자신의 요구가 무엇인지 모른 채 당장에 이끌리는 대로 비판없이 수용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힘의 원천은 자기의식의 수준 밑바닥에서 미처 이성이 정확히 알아차리기 전에 행동중추에까지 압박하는 충동으로 발전해버리는 시작의 미약성과 눈사태와 같은 전개과정의 급진전성입니다. 

    

내가 나의 몸에서 주는 신호를 받아주는 것은 하나의 생명유기체로서 존속하기위한 조건일 수도 있지만 위의 과정을 거친 신호는 중독을 초래하여 파멸에 이끄는 신호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알아차림으로써 이 신호를 구분하여야 합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일과를 수행하는 동안에는 그 신호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의 과제를 끝내고 무언가 보상을 바라는 마음에 속에서 올라올때 그때 신호가 있을 것입니다.

이때 그 신호를 구분하고 그 마음의 가닥이 담배로 향하는 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순간 나의 불안정한 마음이 담배를 피우면서 보상을 받길 원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알아차리기만 하면 그 다음은 다른 마음의 변화가 생겨납니다.     

그 변화는 미묘하고 아주 작아서 알아차리기 쉽지 않지만 지금껏 보지 못했던 자신 속의 또다른 존재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아 어쩌면 그것은 또 다른 존재라는 말이 부적절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의 이면이랄까 아니면     

지금까지 쓸데없다고 시시하다고 일상적이며 반복적이고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팽개쳐둔 스스로의 그림자일 수도 있지요.     


그것은 과연 진정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는 내가 진정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에 대한 자각의 징후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 따라서 담배를 끊는데 성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숙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첫째로 마음은 관성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 動한 마음은 가속도가 붙어서 충족될 때까지 멈출 줄 모릅니다.

'동하기 이전에 그 마음을 멈추십시오.' 

이를 멈춤이라고 합시다. 

    

☆ 둘째로 미묘한 마음의 결핍의식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무의식의 수준에서 이를 충족하려는 움직임을 진행시킨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기의식이 명백히 깨닫는 수준에서 일어나는 충동이거나 이끌림이라면 이성이 판단하고 추론한 뒤에 행동할 것입니다. 그런 때에는 적어도 자기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빗나갈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담배를 끊으려는 사람은 먼저 미묘한 결핍의식과 무의식적인 자기 보상회로라는 충동이전의 담배를 피우도록 이끄는 힘을 잘 알아서 자신이 지금 어떤 마음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에 담배라는 유혹이 어떻게 머리에 떠올랐는지 지켜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이를 '알아차림'이라고 부릅니다. 

    

☆ 셋째로 알아차림이 있고 난 연후에도 마음이 결단을 짓지 못한다면 멈추고 알아차리는 것과 관계없이 결단에 의해 끊었던 담배를 다시 결단에 의하여 피우게 됩니다.     

결단을 내리는 마음 그리고 이 마음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유지되는 것 이를 '지킴'이라고 합시다.     

마음이 바깥의 경계와 만나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멈춤이 있고 알아차림이 있고 지킴이 있다면 돌아서서 안타까워하거나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입니다.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큰 일이 아닙니다.     

다만 나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고 있는 지 아는 것과 그 것을 향 할 수 있는 용기가 더욱 큰 것입니다.     

담배를 끊으려다 이 것을 발견한다면 마치 무협소설을 보다가 깨달음을 얻는 것과 같은 횡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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