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원내대표인 김태년 의원이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한마디 했습니다.
"부산을 또 가야겠네 하 참 (한숨)"
야당은 이때다 하고 여당의 부산 홀대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지난 9일 부산 방문에 이어 또 가기 싫다는 뉘앙스와 일이 잘 안 풀린다는 느낌이 겹쳐져서 묘한 해석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통과 문제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을 유지할 것인지 이슈가 되고 있는 한편 여당의 선물 보따리에도 박형준 후보가 굳건한 우세를 지키고 있는 부산시장 보궐선거의 어려움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한마디 했다가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실언으로 불거지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16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7·10 부동산 대책을 주제로 토론한 뒤 마이크가 꺼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해도 (집값은) 안 떨어질 것"이라고 말한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이크 사고를 통해서 진실이 드러났다고 믿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의 자아표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하면서 자아 연출의 사회학이라고 제목을 바꿔 달았더군요.
미국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이 미시사회학적 관점에서 현상학적 방법론을 적용한 책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일상적 삶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을 꾸미고 연출하는 공연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출의 과정에서 명시적 표현 즉, 드러나는 표현과 암시적 표현 깔아주는 표현이 대비됩니다.
우리는 흔히 손님으로 가서 음식을 대접 받으면 '잘 먹었습니다' 라고 인사를 합니다.
주인은 그 손님의 말보다는 접시에 남긴 음식을 보고 판단할 것입니다.
이때 잘 먹었다는 말은 드러나는 표현이고 접시에 남긴 음식은 암시적인 표현인 겁니다.
드러나는 표현과 깔아주는 표현이 서로 다를 때 우리는 깔아주는 표현을 상대의 진심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의 가정집에 초대받은 손님은 주인이 창문가에 서서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정원을 지나는 동안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가 현관앞에서 억지 미소를 짓습니다.
물론 본인이 원하지 않지만 의무감이나 이해관계때문에 부득이 초대에 응할 경우일 것입니다.
주인은 창문가에 서서 이미 손님의 표정을 확인했습니다.
주인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을 때의 표정과 정원을 걸어올 때의 표정 둘 중에서 어떤 것을 신뢰할지는 자명합니다.
여기서 현명한 손님은 주인의 시선이 미치는 범위라면 어두운 정원길에서부터 미리 즐거운 표정을 하고 들어갑니다. 주인은 두 표현이 같기 때문에 손님의 진심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본심을 감추고 상대에 맞추어 자신의 자아를 조정하는 것은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고 생존전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이크가 꺼져 있는 줄 알고 하는 말은 접대용 멘트나 정치적인 수사가 배제된 본인의 진심이 담긴 말일 것입니다. 드러나는 표현이 아니라 깔아주는 표현이 노출된 것이니까요.. 이때 언론이나 반대당, 그리고 일반국민들은 깔아주는 표현을 더 신뢰할 것입니다.
이번 김태년원내대표의 해프닝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것같습니다만 선거라는 변수때문에 한동안 설왕설래가 잦을 것같습니다.
정치인들의 구설수는 본인의 자기관리에 치명적입니다.
청문회의 도마에 오르면 특수지위를 남용한 부동산 투기와 주식 아파트 자녀들 교육문제들이 빠지지 않고 단골메뉴로 등장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정치나 고위직에 오르려는 사람은
도덕적인 잣대를 일반인보다 높게 세워서 살아야 한다는 윤리가 새겨졌으면 좋겠습니다.
기성 정치인들도 사회학적 소양을 쌓아서 원색적인 비난이나 인신공격보다는 우아하고 품위있는 연출로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해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