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형상화 이후에 마주치는 인지의 관성
우리는 왜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가?
혹은, 왜 보이는 대로만 보는가?
이 질문은 우리가 무언가를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직후에 오히려 더 치명적으로 돌아온다.
바깥의 사물이 내 안의 형상과 맞물려 '의미'를 생성하는 순간,
인지 체계는 그 안락함에 안주하려는 강력한 습관을 발동시키기 때문이다.
이를 '인지의 관성'이라 부를 수 있다.
형상화가 인식의 형식이라면,
관성은 그 형식을 고착시켜 새로운 흐름을 막는 벽이 된다.
인지의 관성이 우리가 도달한 형상을 다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는 네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 속도는 형상의 세밀함을 지운다.
우리는 한 번 형상화된 의미를 붙들고 다음 장면으로 빠르게 넘어가려 한다.
이 속도는 효율적이지만, 형상 너머에서 새롭게 누적되는 반복을 포착하기엔 지나치게 빠르다.
둘째, 설명은 형상을 박제한다.
우리는 마주한 형상을 음미하기보다 '왜'라는 질문을 통해 서둘러 논리적 서랍에 집어넣는다.
설명이 시작되는 순간, 살아 움직이던 형상은 개념이라는 표본으로 굳어지고 관찰은 중단된다.
셋째, 익숙함은 형상을 무디게 만든다.
내 안의 형상과 바깥의 사물이 한 번 정합을 이루고 나면,
우리는 그것을 '이미 아는 것'으로 처리한다.
관성은 새로운 자극을 이전의 기억으로 덮어버림으로써 형상이 새로워질 기회를 박탈한다.
마지막으로, 감정은 형상을 왜곡한다.
분노나 기대 같은 감정은 특정 형상을 과도하게 부풀리거나 비틀어버린다.
그 결과, 형상은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존재하지 못하고
감정의 파고에 휩쓸려 파편화된 잔상으로만 남는다.
결국 읽어내는 힘이란,
내가 빚어낸 형상에 스스로 갇히지 않는 일이다.
형상화라는 형식을 얻은 뒤에도 끊임없이
그 형상을 부수고 재구성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관성의 법칙을 넘어 더 깊은 사유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