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어내는 힘 3부

1장 멈춤과 단서

by 무뿔

1장을 들어가기에 앞서

3부는 앞선 1,2부와 진행방식이 다릅니다.

이제까지 다룬 도구와 기술이 텍스트안에서의 어떻게 실제로 작동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하나의 길잡이가 될 텍스트가 필요했습니다. 나는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을 선택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난해한 지식을 전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읽는 이가 지금까지 서 있던 '보는 위치'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보는 위치를 의심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우리는 보통 책을 읽을 때, 내가 가진 상식과 기준이라는 단단한 지면 위에 서서 텍스트를 봅니다.

하지만 푸코의 문장을 마주하면, 내가 딛고 있던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분류법, 사물을 인식하는 순서, 인간을 이해하는 틀 자체가 사실은 시대가 만들어낸 하나의 '배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헤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라보던 '안경의 도수'가 텍스트와 맞지 않아 어지러움을 느끼는 상태.

그것이 보는 위치를 의심하게 되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말과 사물의 서문부터 끝페이지까지 충실한 감상이나 해설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미셀 푸코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내가 읽다가 멈춘 책이기 때문입니다.

마침 『말과 사물』을 다시 읽고 있는 중이라, 내가 겪는 이 멈춤과 시선의 혼란을 가감 없이 기록하며 3부를 진행하려 합니다.



3부 1장 텍스트의 구조와 도구

1. 멈춤과 단서

미셸 푸코는 『말과 사물』의 서문에서

이상한 고백 하나를 남긴다.

보르헤스가 인용한,

어떤 중국 백과사전의 동물 분류 목록을 읽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보르헤스의 텍스트에 인용된 "어떤 중국어 사전"에는 "동물이 a) 황제에 속하는 것, b) 향기로운 것, c) 길들여진 것 d) 식용 젖먹이 돼지, e) 인어 f) 신화에 나오는 것, g) 풀려나 싸대는 것, h) 지금의 분류에 포함된 것, i) 미친 듯이 나부대는 것 j) 수없이 많은 것 k) 아주 가느다란 붓으로 그린 것, l) 기타, m) 방금 항아리를 깨뜨린 것, n) 멀리 파리처럼 보이는 것"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말과 사물 서문 p7


사실 이 목록은 이해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또렷하게 보였기 때문에 웃음을 유발한다.


"우리는 이 분류가 '중복'과 '누락'을 피해야 한다는

분류의 최소한의 규칙조차 노골적으로 비웃고 있음을 직감한다.

논리적 근거는 사라졌는데 분류의 형틀만 남아 있는 이 기이한 목록 앞에서,

우리는 이것이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도대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된다."

푸코는 이 웃음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그는 멈춘다.


『말과 사물』을 읽다 보면

독자는 종종 이 멈춤을 다시 경험한다.

문장은 분명하고, 논리는 이어지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어디에서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어진다.

심지어 다음 문장을 읽어나가면서도

지금까지 무엇을 읽어왔는지 푸코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짐작이 가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런 푸념같은 용어의 나열을 계속 읽고 있는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앞으로 가서 상대적으로 안전해진 부분부터 다시 읽어본다.

이 반복은 인내라기 보다, 멈춤이 발생한 이유를 찾기 위한 시도이다.

이렇게 반복해서 읽게 되는 것은 두번 세번 읽어가면서 가려졌던 것이 보일 때가 있고

이것이 반복되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게 푸코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성취감이 있어서이다.


읽다가 멈췄을 때, 사람들은 대개 그것을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대부분 정확하지 않다.

어렵다는 감각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멈춘 이유를 두뇌가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독자는

자신의 읽기 능력 앞에 벽이 생겼다고 느끼고, 그 벽을 넘기보다는 물러서는 쪽을 선택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멈춤은 그런 벽이 아니다. 멈춤은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신호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계속 읽을 수 없다는 신호에 가깝다.


이 갑작스러운 멈춤은 어떤 의지나 문해력의 문제라기보다 인지체계의 작동방식과 더 깊이 연관되어있다.

우리의 인지 체계는 일종의 큐처럼 작동한다.

입력된 정보는 순서대로 처리되며,

기존의 스키마와 빠르게 대조된 뒤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하나의 조건이 있다.

의미가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조건이다.

이때 문장이 이해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구조와 합이 맞지 않을 때 인지 처리는 중단된다.

우리가 읽다가 멈추는 순간은, 대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여기서 이 멈춤을 어떻게 단서로 바꾸느냐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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