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뿔 Dec 05. 2020

내 생각에 가치를 부여하려면

오랫동안 나는 고민해왔습니다.

'얼마나 알아야 자신의 판단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

'이미 완벽한 어느 누군가의 생각이 아니라 내안에서 자라난 생각에도 가치를 매길 수 있을까?'

스스로의 생각은 늘 부족하고 모자라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세상이 놀랄만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때로는 수준이하의 생각밖에 못하는 것일까하고 풀이 죽기도 합니다. 늘 나의 생각에는 논리적인 비약이 있고 이상에 빠져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거나 때로는 현실에 빠져서 대안을 볼 수없는 양극단을 반복하는 등의 기복이 심했기에 스스로의 생각에 대해 자신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러한 생각이나 판단, 사유가 어느 수준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단지 지식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결과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희망의 인문학  저자  얼 쇼리스  출판 이매진 발매  2006.11.27.


인문학이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의  책(희망의 인문학)을 읽었을 때는 과연 인문학이라는 것이 일군의 그리스 철학과 근대철학, 그리고 문학과 역사책들로 구성되어있는 그 내용으로 어떻게 그 사람의 신념과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하고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빈곤하고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사회의 밑바닥 인생들이 인문학을 접하면서 변화하는 기획은 무척 흥미롭지만 배울 기회를 가지고도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자신이 '그'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네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라클은 네가 들어야 할 말을 한 것 뿐이야 네오, 너도 나처럼 곧 알게 될거야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의 차이를"


인문학을 아는 것과 인문학을 익혀서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다릅니다.

길을 아는 것에서 길을 걸어가는 단계에는 어떤 변곡점이 숨어있을까요?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현대자동차 정의선회장이 소크라테스를 인용하면서 "용어를 정의하는 것은 지혜의 첫걸음"이라고 말하는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재벌3세가 소크라테스를 말하는 것이 신기했지만 어쩌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인문학의 중요성을 잘알고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자조섞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문학이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크라테스식 교수법이 어쩌면 이런 의문에 대한 정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신탁을 듣고 고민하게 됩니다.

자신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데 왜 아테네의 수많은 지인과 현인을 제쳐두고 내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걸까?

그는 당대의 위인들을 찾아가서 물어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알아보려 했던 것입니다.

순례를 시작하자마자 그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 모른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답을 얻게 되고 젊은이들과 어울려서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가르침을 주려합니다.

여기서 유명한 산파술이 나오게 됩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산파였던 소크라테스는 마치 산파가 산모를 도와서 아이를 받아내는 것처럼 미처 자신이 인식하지 못했던 무지를 자각하고 이제까지 시도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인식을 통해 지혜를 얻도록 할 수 있다고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활동을 산파술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고교생을 위한 윤리용어사전 산파술 편집)

우리는 소크라테스 입장만 생각했지 질문을 받는 당대의 명사들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소크라테스의 질문을 받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소설이 우리나라를 강타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TV 시리즈물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최종보스인 찰스 킹스필드 하버드 대학 법학 교수로서 수업시간마다 던지는 질문으로 학생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죠..... 그는 학생들이 판례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그 말의 정당성을 증명해보라고 요구합니다.


킹스필드교수는 첫 수업시간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여기서는 소크라테스식 방법을 사용한다. 대답하고 질문하고 대답하고, 내가 하는 질문을 통해 제군들은 스스로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질문의 답을 알고있다고 생각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는 데 그건 완전한 착각이다. 내 수업 시간에는 항상 다른 질문이 준비되어 있다. 이건 뇌수술이다. 내가 던지는 작은 질문들이 제군들의 뇌를 속속들이 검사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알겠지만 재수없게? 킹스필드교수에게 걸리면 영혼이 탈탈 털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동급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를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끔찍할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어떤 사실도 이면이 있고 정반대의 해석이 가능하며 우리의 상식은 우리의 얕은 경험과 알량한 지식이 타협한 결과라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치 오바이트해놓은 결과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낱낱이 분해해서 드러내보이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경험일겝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의 공분을 사서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 운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것에는 이러한 소크라테스식 교수법에 강제적으로 발려버린 당시 아테네 지배계층의 분노도 어느정도 개입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스티브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면 전재산을 내놓겠다고 해서 멘토와의 점심식사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가슴뛰는 이벤트로 자리잡고 있습니다만 과연 스티브잡스는 소크라테스가 -상대가 애플의 CEO라는 것을 무시하고 또는 상대가 누구라는 것에 아무런 상관없이 그리고 인격적인 배려도 없이 - 심술궂게 웃으면서 그가 하는 모든 말들의 근본을 뒤흔들 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을 자신이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가장 심층적인 부분에까지 한낮의 빨래줄에 널듯이 탈탈 털리는 경험을 통해 단련된 두뇌는 어떤 역량을 지니고 있을까하는 의문에 생각이 미친다면 그런 미친 짓이라도 해보고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질문하고 대화하는 하브루타식 독서법'을 통해서도 알 수있었지만 우리의 사유는 질문과 대화를 통해 성장합니다.


       


 질문하고 대화하는 하브루타 독서법  저자양동일, 김정완   출판 예문출판사  발매2016.04.27.


책의 제목에서 대답이라는 말이 빠져있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이 주어지면 우리는 어떻게든 대답을 떠올립니다.

모르겠다는 생각조차도 대답의 일종입니다.

객관식 문제에 길들어져 있는 기성세대는 질문만 있고 답이 없는 상황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정답이 존재하고 내가 그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답의 존재는 더이상 고민하고 성장하지 않게 만드는 브레이크입니다.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질문을 만드는 힘과 그 질문에 견디는 힘이 핵심인 것입니다.

효과적인 질문과 대화를 우리 삶의 초기에 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찰하고 그 생각의 근거가 되는 것은 과연 오류없이 참된 사유를 통해 얻어진 것인지 검토하는 과정이야말로 철학의 과업이자 본질인 셈이고 이러한 정신적인 훈련이 인문학의 가능성입니다.


자신이 하는 말 한마디도 허투루 내버려두지 않고 모조리 검토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두뇌는 마치 뇌수술을 받은 것처럼 사고자체의 진화를 이루게 되고 발상-전개-판단-결론에 이르는 모든 사유의 과정이 변화해 있을 것입니다.


독서가 훈련된 과정을 통해 문자를 읽어들여서 지각하는 반응시간을 줄임으로써 생각하는 여유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짧은 시간의 확보가 우리의 사고를 비약시키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이론이 있더군요....

오랜 시간 독학으로 책을 읽어오면서 얻었던 것을 확신시켜주는 책이었습니다.

       


책 읽는 뇌   저자 매리언 울프 출판살림  발매  2009.06.23.


말하자면 시각적인 기호와 언어적인 맥락을 매칭시키는 인지적인 훈련을 통해 사유하는 독서가 가능해진다는 것....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모든 생각과 판단과 사유 또한 의식하지 않아도 내가 떠올린 생각이  판단되고 검토되어서 말을 하고 선택하고 결단을 내린다면 - 실제로 우리는 사회화를 통해서 그 사회에 허용되는 것만을 생각하고 표현하도록 주입되어있기도 하니까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주입이 가능하다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주입도 가능할 것이라는  -  우리의 삶은 이전과는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소크라테스 식으로 말하자면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과 같은 맥락인 셈입니다.


성찰하는 삶과 현대인의 일상은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요?

그렇게 멀리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장시대와 이데올로기의 독소를 제거하고 사유의 영역에서 내 발로 일어선 순간부터 성찰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독서의 입문단계에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독서로 나아가기 위한 나침반이 생겼습니다.

사물이나 정보를 알아차리는 단계에서 부터 나의 '앎'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와 그 앎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이 두 가지 질문입니다. 

세잔의 사과 자세히 보면 사과를 보는 방향이 섞여있음을 알 수 있다.

저기 사과가 있다고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사과가 어떻게 왜곡되게 인식되는가을 이해하는 것이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나의 생각을 간섭하고 있는 관념들을 알아차리고 편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길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