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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뿔 Jan 09. 2021

두번째 화살

여행으로서의 독서


문자는 언어입니다.

언어는 소리로 소통되어왔습니다.

문자는 기호이므로 시각을 읽어내는 시각과 관련되지만 언어는 소리를 듣는 청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시각과 청각의 협업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문자가 처음에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은 문자로 적는 행위가 종국에는 오랜 암기와 구전의 역사를 끝낼 것을 두려워했고 이는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불교의 경전은 부처님 사후에 문자화 됩니다.

부처님 생존당시에는 문자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남아있는 대부분의 불경은 구전으로 전해오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암기력은 책 수십 수백 권을 암송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반야심경을 보면 게송으로 '아제 아제 바라 아제 바라승아제 모제 사바하'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저 구절은 다른 경전의 내용과 달리 뜻이 없는 소리만 있습니다.

범어를 한문으로 번역할 때 경전의 끝에 있는 게송은 뜻을 풀이하지 않고 그 음을 빌려와서 썼기 때문입니다. 

게송은 그래서 범어의 음가를 가지고 있지요. 

이 게송은 오랜 구전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그 경전의 가장 소중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짧고 운율이 담긴 게송으로 만들어서 암송하기 좋게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기록이 시작되자 더 이상 암기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경이로운 암기력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전화번호를 외우던 습관이 핸드폰이 나오고 나서 삭 없어진 것입니다.

핸드폰에 저장해두면 외울 필요가 없으니까요...

필요하지 않으면 그 능력은 도태됩니다.

글을 읽는 능력이야 없어지지 않겠지만 긴 장문의 글을 읽고 이해하는 일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귀찮은 일일뿐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앞으로 세월이 좀더 흐르게 되면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문명이 나타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새로운 문맹계층이 생겨날 것입니다. 글은 읽을 수 있겠지만 긴 문장은 읽지 못하는 사람들말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다만 읽기 귀찮아서라는 이유로 책을 멀리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책을 읽어내는 힘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라면 귀찮아서 읽지 않는다는 말이 말도 안되는 핑계임을 알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대충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귀찮음을 자아내는 원흉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보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글귀도 새롭게 보면 다른 의미가 새겨질 때가 있습니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마라.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희로애락은 그 자체로는 번뇌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은 거기에다가 자신의 전도망상을 씌움으로써 스스로 번뇌를 쌓아간다.

그게 바로 두 번째 화살이다.

- 정화 스님 대승기신론소 강의/호모쿵푸스 p191 재인용


이 글을 읽고 그럼 첫 번째 화살은? 이라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은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겨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첫 번째 화살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들기 때문입니다.

예측하지 못한 순간 날아드는 첫 번째 화살은 맞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화살은 운좋게 첫 번째 화살이 빗나갔을 때 재차 날리는 화살일 것입니다. 이때는 이미 어느 방향에서 화살이 날아왔는지 가늠하고 대응할 채비를 마친 참입니다. 두 번째 화살마저 맞아서야 살아남기가 어렵겠지요.....

여기서 첫 번째 화살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희로애락 자체입니다. 살면서 항상 뜻대로 되는 법이 없습니다. 늘 의외의 사건이 터지고 늘 놀라고 당황하고 분노하고 후회하면서 삽니다. 이런 삶 자체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대응이 끝난 후에 자신을 탓하고 주변을 탓하면서 지옥을 경험하는 것은 두 번째 화살에 맞게 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간을 들여서 오래 처음 보는 것처럼 살펴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놓치기 쉬운 것들입니다.     


누구도 꽃을 보지 않는다.

아주 작아서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이 없고, 무언가를 보자면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를 사귀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조지아 오키프 (1887~1986) 자연주의 화가

(Georgia O'Keeffe | Georgia Totto O'Keeffe)     


마치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연상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시간을 두고 공을 들여서 얻는 것은 귀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자신이 공들인 만큼 가치가 커지는 것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고민을 하고 다르게 보려고 애쓴 책은 기억에 오래 남을 뿐 아니라 차후 생각을 하는 방향에도 영향을 미치게 마련입니다.      

가까이에서 늘 접하는 것에 우리는 시간을 투자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들여서 살필 만큼 가치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면 주변의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극적인 성공을 이루어서 라이프 스타일에 현격한 변화가 생겨나거나 깊은 사랑에 빠졌을 때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세상 모든 것이 이전과 달라 보일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탄식했던 옛 어른들은 그 이상을 보기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사랑하라 고 답했습니다. 사랑하라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는 전과 다르리라.(유흥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사랑에도 잘 빠지지도 않고 갑작스런 성공을 경험하지도 못하는 우리가 이와 같이 해 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낯설게 하기입니다.     

이처럼 낯설게 하기는 귀차니즘을 극복하는 수단이 됩니다.

이 낯설게 하기의 대표적인 사례가 여행일 것입니다.

실제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여행속에서는 오히려 일상의 번거로움에 심신을 돌아볼 여유를 잃게 됩니다. 책을 따라 떠나는 여행은 불편함은 없고 즐거움과 깨달음이 가득합니다. 책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글이 문장이 되고 문장이 단락이 되고 단락이 한권의 책의 양이 되도록 읽어나갈 수 있는 사람에게 열려있는 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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