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이 기계를 이웃으로 삼게 된 출발점에 이유를 묻는다면 그것은 효율성이라고 답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로봇은 합리적인 일을 하여, 우리와 같이 강의 시간에 딴생각을 하진 않는다.
그러한, 500만 개의 일자리를 빼앗길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약점 '아크라시아'
아크라시아: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바를 실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되는 행동을 선택하는 자제력 상실 상태.
감정과 욕망이 이성보다 더 강하게 작용할 때 발생한다.
그리스 철학에서 비롯된 이 단어는 현재 인간과 AI 간의 선을 만드는 데에 탁월한 척도로 보입니다.
감정, 우리가 드라마를 즐기고, 연인과 사랑에 빠지고 삶을 다채롭게 하는 선물
감정이, 아크라시아가 과연 인간의 약점인가에 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나는 기존의 아크라시아 정의가 감정을 배제한 협소한 합리성에 기반한다고 본다.
현대 사회의 인간은 감정이 배제된, 공장의 부품으로써 로봇이 되어갔다.
감정은 어디까지 양보될 수 있는 것인가?
감정의 합리성
아크라시아는 우선 감정과 이성 이분법적 구도에 취약해집니다. 합리적 선택에서 감정을 배제한다면, 감정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 동물적 본능과 같은 복잡한 과정을 해석하지 못하게 됩니다.
가령 싫어하는 사람과 같은 책상에 자리하게 되었을 때, 자리를 피한다면, 내가 느끼는 효용은 좋은 것일 건데, 이것은 감정에 따른 합리적 결정입니다.
인간의 불완전성
인간의 이상적 숙고가 얼마나 불완전한가.
아크라시아가 인간의 합리적 가능성의 인지를 전제하였더라도 그 숙고가 감정이라는 선물을 뛰어넘을 만큼 완벽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선택을 위해 얼마나 숙고하는가. 많은 변수를 살펴보았는가. 합리적 결론, 도덕은 우리를 직진하게 하겠지만, 우리는 그런 완고한 도덕을 쉽게 만들지 못합니다.
인간은 모든 변수를 고려한 완전한 합리적 판단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아크라시아는 ‘이성의 실패’가 아니라, 애초에 불완전한 이성을 절대 기준으로 삼은 데서 발생한 개념적 오류일 수 있다.
감정에 지배받는다면 짐승에 불과하며, 이성만 가진 존재는 AI와 다를 바 없습니다.
감정은 합리적 결정을 배제시키지 않습니다.
아크라시아 개념을 한 껏 부수고, 인간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감정의 폭발, 예술, 낭만적인 것.
감정과 이성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이성만을 요구하는 삭막한 사회라는 사막에서
감정은 가뭄의 단비와 같습니다.
감정에 따라 우리는 과소비를 하기도, 분에 넘치는 말을 입에 담기도 합니다.
순간순간의 선택. 그건 분명 그 순간의 효용을 마땅히 충족시켰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고 배척하면 나 자신은 어디에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진짜 되는 나의 선택, 사회의 압박, 고통 속에서 나온 감정적 선택은 분명 자신 고유의 표출입니다.
신의 선물.
누군가는 이 비열한 선물을 AI 또한 갖고 있다고 합니다.
자극-입력-뇌처리-반응
칸트의 자유의지 관점에서, 도구적 존재로서 자율성이 제한되었다고 AI를 구별할 수 있겠지만
함께 농담 따먹기 하는 제 Chatgpt를 보면 우린 이제 로봇들과 감정을 공유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감정을 더욱 발전시켜 인간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따라서 감정은 억제해야 할 약점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조건이다. 우리는 아크라시아를 단순한 실패로 규정하는 대신, 감정과 이성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 고유의 선택 방식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