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생애 1.

이미지는 말을 쏟아내야 했다 — 중세

by kate

중세의 이미지는
조용할 수 없었다.

이 시기의 그림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달해야 할 것이 있었다.


믿음은 설명되어야 했고,
두려움은 분명해야 했으며,
구원과 심판은
눈으로 확인되어야 했다.

글을 읽지 못하던 시대,
이미지는 말 대신
설교를 맡았다.

천국은 위에,
지옥은 아래에 놓였다.
그 사이에는
판단받는 사람들이
질서 있게 줄을 섰다.


Giotto의 〈최후의 심판〉에서
이미지는 망설이지 않는다.
공간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인물들은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다.

이 그림은 묻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은
애초에 필요 없었다.

이미지는 대신 말한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이곳으로 간다.


중세의 세계는
이미지에게
침묵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이미지의 말은
더 많아진다.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c. 1490–1510)


Hieronymus Bosch의 <쾌락의 정원> 에서는
질서마저 흔들린다.

화면은 비좁고,
여백은 사라지며,
기괴한 형상과 벌의 장면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이미지는
설명이라기보다
말의 압도에 가깝다.

왜 이렇게까지
말이 많아졌을까.


중세의 흑사병등 여러 전염병과 전쟁,
예측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더 강한 확신을 원했다.


그래서 이미지는
논리보다 공포를 선택한다.

여기까지 떨어진다.

이렇게 망가진다.
피할 수 없다.


이미지는
의심이 생길 틈을
허락하지 않으려 한다.

말이 많아질수록,
이미지는
더 단호해진다.


중세의 이미지는
결코 관객에게
해석을 맡기지 않았다.

그 시대의 세계는
이미지에게
명확함을 요구했고,

이미지는 그 요구를
이미지 안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빼곡하게

그리며 감당했다.


그러나
이 과도한 말들이
넘쳐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한다.

늘 위를 향해 있던 시선,
늘 경고를 받아들이던 눈,
늘 판단받는 위치에 놓인 몸.


문제는
신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니라,
계속 위를 보고 있어야 하는 삶 자체가
버거워졌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변화는
신을 부정하는 게 아니고

또 사람들은
신에게서 도망치는게아니고
시선이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하늘이 아니라
땅을,
구원이 아니라
지금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이 질문은
중세 이미지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이미지가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세계와 함께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과 함께
시선은
아주 천천히
신에게서
인간에게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그 자리에
르네상스가 열린다.




다음 글은

르네상스의 이미지는
여전히 말을 하고 하지만,
신 대신 인간의 질서를
화폭 위에 세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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