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의 주인이 인간으로 넘어가며 (르네상스 1)
중세의 이미지는
모든 것을 말하려 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금지되는지,
어디로 가게 되는지까지
이미지는 대신 결정했다.
그림은 설명이었고 규칙이었으며,
사람을 붙잡아 두는 장치에 가까웠다.
르네상스는
이 넘쳐나는 말에서
조금 물러선다.
말을 멈추지는 않지만
더 이상
모든 답을 대신 말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지는
세계가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고
신아래 종속되어온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세상이 인간들이 추측하고 계산할수 있는 방법으로
서있었다.
즉, 신에서 벗어나서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고있다.
르네상스의 세계에서
신과 인간 사이의 간격은
두려움의 틈이 아니다.
그 거리는
재고, 그릴 수 있는 거리다.
비례와 균형,
계산과 구조로
알고 있는것을 표현한다.
미켈란제로의 인물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몸처럼 서 있다.
그들의 근육은
이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에 힘이 실리며,
어떤 균형으로 서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인물들은
우연히 그렇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몸이 이미 계산되어 있고,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고 있다.
자세 또한
인간으로 아주 당당한 모습이다.
르네상스의 이미지는
인간의 몸을 통해
하나의 확신을 남긴다.
세계는
두려운 미스터리가 아니라,
이해 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다.
이미지는 더 이상
인간을 묶기 위해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그 안에 설 자리를 남긴다.
이것이
르네상스 이미지의 첫 번째 변화다.
이미지는 여전히 말하고 있지만
그 말은
명령이나 경고가 아니라
질서에 대한 설명에 가깝다.
르네상스의 이미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신의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초점은 점점
인간의 얼굴과 반응으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