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관계성
가족에게는
이상할 만큼 말이 헐거워진다.
밖에서는 하지 않을 말들을
가족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톤은 낮아지고,
문장은 짧아지고,
설명도 예의도 생략된다.
우리는 그걸
“편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가족에게 쓰는 말은
대개 가장 빠르고
가장 직접적이다.
“그건 아니지.”
“왜 또 그래.”
“그만해.”
이 말들은
회사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가족에게는
아무런 준비 없이 튀어나온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register를 가장 낮게 설정한다.
register가 낮아진다는 건
친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종종
설명과 배려를 생략해도 된다는 착각이다.
이미 아니까
굳이 말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가족이니까 이해할 거라고 믿어서
하지만 언어에서
생략은 언제나 위험하다.
특히 관계가 가까울수록
그 생략은 더 크게 작용한다.
우리는 가족을
가장 안전한 청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의 완성도를
가족 앞에서는 낮춘다.
하지만 가족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청중이고,
가장 많은 말을 축적하는 관계다.
한 번 던진 말이
가장 깊게 남는 관계에서
우리는 가장 가볍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register를 낮추면
관계가 평등해질 거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짧은 명령
설명 없는 판단
감정만 남은 말
이것들은
상대를 동등한 대화자가 아니라
반응해야 할 대상으로 만든다.
register가 낮아질수록
관계는 평등해지지 않고
오히려 위계가 생긴다.
사실 이부분이 한국어 학습자가 어렵게 느끼는 부분이다.
나이로만 존댓말을 써야한다는 학습에서 중급으로
올라가며 이 심오한 문화적인 면을
학습하면서 존댓말사용인지 아닌지
헤매는 지점이다.
다시 가족이야기로 가서
서로의 말로 입은 상처도
그러나 그게 아니 라는 큰 깨달음이 올때는
쉽고 빠르게 오지 않는다.
뇌 정지 오는것 처럼 쿵하고 쳐서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게 아니고
그냥 매번
에피소드 10개에 조금씩 깨달으니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리는 지도.
난 여전히 머리로는 오케이 하지만
가슴으로는 이 관계설정이
어렵다.
항상 가족이라는 말 속에는
묘한 기대가 섞여 있다.
이 정도 말은 괜찮겠지, 그래도 가족이니까, 나를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이 기대는
말을 거칠게 만들고, 내 감정을 다 드러내고
register를 저 아래로 낮춘다.
하지만 가족은
버텨주기 위해 존재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깨달음으로 또 아프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내가 편해진 걸까,
아니면 기준을 낮춘 걸까.”
가족에게만
존중의 기준을 낮추고 있다는 생각.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에게는
가장 높은 register가 필요하다.
아주 가끔은
가장 조심스러운 말, 가장 완성된 문장, 가장 많은 고려..
요즘 아이들말로 개피곤하다.
요즘
가족에게 말을 할 때
조금 더 늦게 말하고,
조금 더 길게 생각하려 한다.
그게
가족이라는 관계를
지키는 언어라는 깨달음이 주는 지혜.
가족에게서
말이 불편해졌다면,
그건 멀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너무 낮아졌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족에게도
register를 다시 올리려한다.
사는게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