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긋난 register
처음에는
서로 말을 안 들어서라고 생각했다.
같은 한국어를 쓰고 있고,
같은 단어를 쓰고 있고,
심지어 같은 문장을 반복하고 있는데
대화는 자꾸 엇나갔다.
나중에야 알았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위치에서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대화가 이상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설명하고 있었고,
상대는 점점 방어적으로 반응했다.
나는 이해시키려 했고,
상대는 평가받고 있다고 느꼈다.
말의 내용은 틀리지 않았지만
말이 놓인 register가 달랐다.
register를
우리는 흔히 말투나 분위기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정확하다.
register는
“지금 우리가 어떤 관계 위치에 서 있는가”를 드러낸다.
설명하는 사람과
설명을 들어야 하는 사람
판단하는 사람과
이해받아야 하는 사람
이 위치가 어긋나면
말은 곧바로 불편해진다.
나는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설득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맥락을 보태고 있었지만
상대는 자신이 부족한 사람으로
배치되고 있다고 느꼈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관계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위계가 생겼다.
그때 우리는
같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같은 register에 있지 않았다.
이런 어긋남은
감정 문제라기보다 구조 문제다.
한 사람은 ‘정리하는 위치’에 있고
다른 사람은 ‘정리되어야 할 위치’에 있다면
아무리 부드러운 말도
불편하게 들린다.
그래서 어떤 대화는
다정해질수록 더 어긋난다.
말을 더 잘하면 해결될 거라고 믿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어떤 관계에서는
말을 줄이는 것이 유일한 조정이었다.
설명을 멈추고,
판단을 내려놓고,
침묵을 선택했을 때
비로소 register가 맞춰졌다.
침묵은 포기가 아니라
위치를 내려놓는 언어였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같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필요했던 건
같은 register에 서는 일이었다.
같은 높이에서,
같은 거리에서,
같은 책임을 지는 위치에서
말을 시작하는 것.
언어를 가르치다 보니 단어,조사 하나하나에도 민감해지는 때가 있다.
사실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말을 맞추기 전에
먼저 위치를 맞춰야 한다.
나는 요즘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 넘어서
언어로 관계를 읽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대화는 조금 덜 상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