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이 줄어들기 시작한 순간
가까운 관계에서는
설명이 점점 줄어든다.
처음에는 배려라고 생각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이미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 같고,
이쯤이면 느꼈을 거라고 믿는다.
“이 정도면 알겠지.”
그 말은
관계를 믿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순간부터
말은 관계를 돕기보다
시험하기 시작했다.
가족 안에서
이 가정은 더 쉽게 등장한다.
하루를 함께 보내고,
같은 공간에 있고,
비슷한 맥락을 공유한다고 느낄수록
우리는 설명을 생략한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굳이 말로 확인하지 않는다.
그 생략은
처음에는 편안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미묘한 부담이 된다.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하는 말’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주어가 사라지고,
이유가 줄어들고,
질문이 없다.
“그건 알잖아.”
“말 안 해도 되잖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
문장은 짧아지지만
관계 안에 남겨지는 과제는 늘어난다.
상대는
알고 있어야 할 사람이 되고,
모르면
설명받기 전에
부족해진다.
이 가정은
갈등이 없을 때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같은 말이
전혀 다르게 들린다.
한쪽은
“이미 다 말했는데”라고 느끼고,
다른 한쪽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느낀다.
오해는
말의 내용에서 생기지 않는다.
전제가 어긋난 자리에서 생긴다.
언어를 가르치면서도
나는 이 장면을 자주 본다.
학습자가 멈칫하는 순간은
문법 넘어선 자리,
말하는 사람이
무엇을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있는지를
읽지 못했을 때가 많다.
다시 글 위로 가서
it,the,this,that의 정체가 무엇인지
찾는다.
그래서 문장을 설명할 때
나는 종종
문법보다 이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 말은
상대가 무엇을
이미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는가.
가까운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종종
말을 줄이면서
관계가 성숙해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확인 없는 생략은
성숙이 아니라
부담일 수 있다.
그 부담이 쌓이면
말은 더 조심스러워지고,
결국
침묵이 선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