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마주하다
이미지가 말을 줄이면,
그 이미지를 이해하려는 책임이 남는다.
그 책임은
더 이상 이미지의 몫이 아니다.
보는 사람의 태도로 이동한다.
몬드리안의 화면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상은 분명히 앞에 있는데,
무엇을 보았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이야기의 실마리도,
설명의 출발점도 없다.
설명은
시작되지 못한 채 멈춘다.
그래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바뀐다.
“이 그림은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이 침묵 앞에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로.
독자는 오랫동안
이해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완성하도록 훈련받아 왔다.
보는 일은
곧 설명하는 일이었고,
설명할 수 있다는 감각은
곧 이해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이 화면 앞에서는
그 익숙한 습관이 작동하지 않는다.
알 수 없다는 감각,
정리되지 않은 상태가
먼저 온다.
이때
독자의 태도가 드러난다.
우리는
이 침묵을 견디는가.
아니면
서둘러 의미를 덧씌우는가.
불편함을 인정하는가.
아니면
억지로 결론을 만들어내는가.
이미지가 말을 줄였을 때,
모든이에게 해석이 열려있다 라고는 하지만
해석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동할 뿐이다.
그 책임을
이미지가 계속 떠안아 주지 않을 때,
독자는 단순히 ‘보는 사람’이 아니라
판단의 자리에 서게 된다.
그러나 그 판단은
아직 방향을 갖지 않는다.
그저
머뭇거림과
당혹과
정리되지 않은 감각으로
잠시 머문다.
이 머묾은
길지 않다.
침묵은
곧 불편해지고,
이 불편함은
다음 태도를 부른다.
그렇다면
독자는
이 침묵을
어떻게 처리해 왔는가.
침묵 앞에서
우리는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모르는 상태를
그대로 두기보다,
설명할 수 있는 말과
의미 있는 형태를
서둘러 찾으려한다.
다음 글에서는
이 ‘서두름’이
어떤 태도를 만들어왔는지를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