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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부상 Feb 07. 2021

무료 자문과 컨설팅에 소비되는 주민

"아이디어 좀 내주세요."

문화예술, 도시재생 관련 활동을 하다 보면 무료로(?) 주민이 소비되는 상황을 자주 본다.


"안녕하세요, ㅇㅇ군청 ㅇㅇ과 ㅇㅇㅇ 주무관입니다. 우리 군에서 이런 사업을 진행할 예정인데, 관계된 선생님들 모시고 회의를 한 번 진행해보려 합니다. 공문 보내드릴 테니, 꼭 좀 참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전화가 오면 대개 해당 사업에 내가(우리 단체가) 참여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과 우리 지역에 잘 알고 있는 내 생각과 의견이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게 된다. 

(대부분 아이디어 회의로 끝나고, 일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업과 회의 성격에 따라 모이는 사람은 다르지만, 

참석자의 간단한 자기소개 후 본격적으로 사업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디어 회의'


'여러 전문가분들 모시고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자문을 얻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ㅇㅇ군청으로부터 용역을 받은 컨설팅 업체(또는 연구소?)에서도 연락이 온다. 


"안녕하세요, ㅇㅇ군 ㅇㅇ사업 관련해서 선생님을 자문위원으로 모시고 고견을 듣기 위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이런 경우엔 '용역업체'임을 잘 밝히지 않고, 공신력을 위해 'ㅇㅇ군', 'ㅇㅇ시'라고 은근히 공무원인 것처럼 얼버무린다. 


"어느 부서시고 직책이 어떻게 되시죠?"라고 되물으면 

"아, 저희는 ㅇㅇ연구소고 ㅇㅇ군에서 의뢰받아 진행하는 겁니다."라고 실토한다. 


회의를 가면 아이디어 회의 + 지역 실정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어진다. 


모두에게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진다. 

공평한 시간 동안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소비된다. 


앞선 두 가지 회의 사례가 그렇다. 

엄연히 공공기관 예산집행지침에 '자문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푼 들이지 않고 지역주민을 회의에 참석시킨다. 

그나마도 회의 후 식사를 제공하는 곳은 최소한(?)의 예의가 남아있는 곳이다. 

충청남도 예산 편성 및 집행 세부지침 중 일부

공공기관에 위탁받은 업체들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문화도시, 도시재생 등 해당 지자체가 욕심내는 사업을 따오기 위해 돈을 주고 계약한 업체들은

적게는 20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까지 받아서 조사, 인터뷰, 연구, 보고서(공모신청서) 작성 등을 진행한다. 

지자체에서 용역비로 지급한 돈은 지역주민, 지역활동가, 해당 분야 전문가 등에게 자문을 얻고, 

자체 조사/연구를 진행해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따올 수 있게 하기 위해 주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지역주민'과 '지역활동가'는 공짜 자문을 해주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자문비가 얼마인가요?


우리 한국 사회가 '돈 밝히는 놀부'를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더군다나 먼저 자문비를 얘기하지 않는 건, 공짜를 원하는 경우가 100 중 80~90이라서

선뜻 묻기도 어렵다.


아무런 이익없이 2-3시간 회의에 아이디어와 의견을 늘어놓고 나면

업체는 그 내용을 토대로 보고서를 만들고 돈을 받는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해 필요한 사람의 시간을 할애받고

아이디어라는 남의 지식재산을 내 호주머니에 넣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고 있다. 


특히 문화예술, 도시재생 관련 분야의 활동가, 종사자들은

아이디어와 기획 그리고 경험이 그들의 돈벌이이자, 유일한 재산이다. 

그 재산을 '지역을 위한 일'이라는 명목으로 착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자체로부터 2억을 받고 지역축제를 진행하는 축제 대행사가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우리 지역을 위한 일이니 쌀과 사람을 내놓으라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일까?


무료 자문과 무료 컨설팅은 업체의 배를 불린다.

지자체의 경우, 공무원의 실적을 만들어준다.


우리나라는 지식재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문화예술업계에서도 행사, 교육, 전시 등 관련 사업의 기획비를 최근에서야 조금씩 인정해주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현실은 전체 예산의 극히 일부만 책정할 수 있거나, 기획비를 책정하면 심사위원에게 밉보여서(돈 밝힌다는 이유로) 탈락되기 십상이기에 기획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얻긴 어려운 상황이다.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기획비 지침. 이마저도 기획보다는 회계, 정산, 아카이브에 대한 수고비를 50,000원 인정해준다.

이러한 이유로 경력이 쌓인 기획자들이 몸 담고 있던 업계를 떠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돈은 '부의 축적을 위한 재료'를 떠나, 노동에 대한 대가다. 

'아이디어'는 활동가와 기획자에게는 오래도록 쌓인 경험과 고민이다.

정신적 노동의 산물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 하는 루팡이 우리 사회에 아직 너무 많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 만든 회의는 그 값을 할 수밖에 없음에도,

"지역(민)의 수준이 이렇습니다."라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배(실적 또는 이익)를 불리는 게 현실이다.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지 않는 산업은 침체될 수밖에 없다. 

무료 자문과 컨설팅에 익숙해져 버린 업계와 지자체는 

실패하는 사업의 원인으로 주민을 탓할 게 아니라, 스스로 원인에 대해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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