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래층엔 누가 살고 있나요.
나의 유년에게.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예쁜걸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였다. 예쁜 물건뿐 아니라, 잘 만들어지고 정성스레 마감된 것에는 온 하루를 사로잡히곤 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도 쉽게 마음을 빼앗겼다. 작은 것의 변화까지 알아차릴 정도로 민감했고, 옷의 마감선에서는 눈과 손이 함께 머물렀다.
나는 자란 환경은 여러모로 어려웠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적신 베갯잇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 없다. 그래도 단념은 쉽지 않았다. 단념되지 못한 마음에서는 먹먹함이 자라났다. 근사한 것을 보면 사로잡혀 몇 날 며칠을 시달렸다. 소유할 수 없다는 괴로움에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고 싶었던 날도 있었다.
이를테면 가정환경 같은 것.
외식을 해본 경험도 거의 없었다. 눈치 없는 시절, 친구들의 외식 이야기가 낯설어서 별나라 이야기처럼 들었던 때도 있었다. 불필요하게 발달해 버린 시각은 내 어깨를 점점 끌어내렸다. 눈치가 없어야 마땅한데도 어쩐지 그러지 못했다.
감각의 축복은 내겐 너무 버거운 짐이었다.
조용히 숨 쉬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신의 가호로 여겨질 시절이니, 당연히 여행이란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내겐 여행 캐리어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낯선 물건이었다. 한 날은 친구들과 여정에서 나만 상자에 짐을 가져왔다.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으면서도, 그날의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나만의 비밀로 부쳐두었다.
그 시절이 떠오르면 나는 여전히 수치스럽다.
내 마음 아랫층에는 나의 어린 시절이 자리 잡고 있다. 아랫집과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문득 자기 연민이 찾아오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아랫층에서 익숙한 울림이 들려온다.
나와 남편의 원가족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이 낯선 곳에 오기로 결정되었던 그때. 보살핌도, 도움도, 익숙함도 그 자리에 두고 떠나와야 했다. 아이들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에, 우릴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엔 걱정이 어려있었다. 어쩌면 그 시선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만하면 단단해졌다 여겼던 나 역시도, 아이들은 괜찮을까 잠시 머뭇거렸으니.
때로는 체력에 부쳐 아이들에게 사랑을 더 주지 못할 때,
다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흥미롭게 쳐다볼 때,
가정의 달 같은 때 아랫층의 울림은 더욱 거세진다.
낯선 곳에 발을 들인 지 이제 겨우 반년 남짓 지나가고 있으니 이것도 딱히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나는, 내가 못했던 것을 아이들은 꼭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것은 고작 투영에서 그치기 때문이다. 나의 결핍이 내게 어떤 작용을 했는지 알고 있다. 그 작용의 결과가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꽃이 지면 열매가 맺힌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가슴속에 꽃을 지니고 산다. 그러나 모든 꽃이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또 누군가는 열매를 원치 않을 수도 있다.
아직 살아내는 중이라,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맺은 열매들이 그것을 증명해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열매가 당장 맺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해하지도 않기로 했다. 아직 변함없이 꽃이 피어있거나, 아직은 계절이 되지 않은 것이라 여기며, 열매를 기다리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또박또박 해나갈 것이다. 아직 시기가 안된 것뿐이다.
반드시 아름답게 끝나지 않더라도, 나는 나답게 마침표를 찍고 싶다. 그날이 오면 내 슬픔을 다 아는 어느 전능한 힘이, ‘그럼에도 너 씩씩하게 잘 살아왔다’고 마침표를 기꺼이 찍어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