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건넨 메시지.
네 눈 안의 나보다, 내 눈에 비친 나를 보길 바라며.
나는 가지에 이제 막 돋아난 노랑과 연두 사이의 색이 주는 생기발랄함을 좋아한다. 움츠러든 추위 뒤의 기지개 같은 역동이 좋았다. 또 가지가 드러난 곳곳의 여백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커다란 잎사귀들의 빽빽함이 주는 울창함은 어쩐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색이 짙어질 즈음엔 우거진 나무에서 맥없이 시선을 거둬들이곤 했다.
봄비는 미미하게 남아있던 초봄의 흔적을 걷어갔다. 연둣빛의 여린 이파리가 나오는가 싶더니 벌써 녹음이다. 사람들은 모여 앉아 얼음이 섞여있는 음료를 달그락 저어 들며 정다운 소음을 내뿜는다. 거친 녹색이 뒤덮은 초여름의 장면이다.
여름의 보폭은 놀랍게도 크다.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풍경이 수시로 변한다. 그 울창함이 주는 그늘을 알고 있다. 큼직한 잎사귀들이 모여서 널따란 면을 이루고 기어이 시원한 어깨를 내주고야 마는 그 그늘의 너그러움도 알고 있다. 때가 되면 형형색색 옷을 갈아입고 내게 건조한 아름다움마저 선보일, 그 풍성한 잎사귀들을 이미 잘 아는 터였다.
그러나 여름의 놀라운 성장은 때때로 나를 묘하게 긴장시키며 숨통을 조였다. 내게는 너무 벅찼다. 시선을 잡아끄는 봄의 부드러움과는, 잠시 머물며 구석구석을 살뜰히 보게 하는 그 다정함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마음속 뒷담화를 듣기라도 한 듯이 마주한 눈앞의 여름은 내게 너는 어떠느냐 물었다. 나는 대답을 늦출 겨를도 없이, 급작스런 파도에 떠밀려 어느 가을에 도착해 있었다. 여느 크기의 가로수처럼 특별히 눈길이 가지 않는 크기와 적당함, 그 인위적인 정갈함으로 멋지게 가지치기된 나무. 미운 구석 없지만 아름다움 또한 없는 나의 나무.
동그맣게 놓인 그 흔하디 흔한 시답잖은 단풍을 보게 되었을 때 나는 그만 도망치고 싶어졌다. 찰나의 시간여행이 선사한 못마땅함에 나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여름에 항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하나나 더 찾아낸 것이다.
문득 봄을 좋아했던 이유처럼 내 삶을 바라보며, 오탈자를 찾기라도 하듯 멈춰있는 지금의 쉼표에서 이제 그만 봄을 놓아주기로 했다. 쉼표가 던져준 화두는 거창하지 않았지만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던 것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뻗어 나아가기로 했다. 그래야만 했다. 지금까지의 모습으로는 기막힌 단풍을 보기란 불가능이었으므로.
나는 고질적으로 나의 봄을 비약하다가 잠시 멈칫하고는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래, 과정으로써 아름다웠으면 되었다. 건너가는 길이 멀었다면 청춘의 아름다움이 길어서 좋았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괜스레 손등을 어루만져 본다. 밥솥의 추가 상모를 이리저리 흔든다. 구수한 냄새가 온 집을 차지했다. 섭섭한 마음을 위로해 주는 누른 냄새다.
여름과의 대화는 어릴 적 바라봤던 무덤덤한 나이듦과 같지 않았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오히려 여전히 순수한 채로 나이 들 수 있다고 해 주는 것만 같았다. 벅찬 여름의 성장처럼 성큼히 가지는 못하더라도 그 시선의 헐렁함으로 두 번째 계단을 걷고 싶다.
거슬릴 것 하나 없던 영화보다 눈물과 웃음이 고루 비벼진 로맨틱 코미디처럼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 짙은 녹색은 성숙함과 닿아있다. 고마운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