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이 전해준 말

다음 대국을 위한 복기담.

by 조수연
아이가 가르쳐준 '나' 돌보기.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꼭 콩나물시루의 콩나물 같다. 내일 아침에도 커있겠지, 무엇이 이렇게 아이들을 크게 하는 걸까.


오늘 든든히 먹은 점심이나 맛있게 비워낸 저녁도 크게 한몫하겠지만 내 생각엔 뭐니 뭐니 해도 그들을 키워내는 것은 태양이 식물을 키워내는 에너지 이상의 밀도를 가진, 첫사랑의 선홍 눈빛이 아닐까 싶다.


하루를 바짝 굶는다 해도 부모가 사랑 어린 눈길로 쓰다듬어준 아이들은 안전하다. 모든 엄마들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기 때문에 1라운드 시작도 전부터 고단한 것일 테다.


이렇게 함께하는 매 순간, 진심을 용광로에 온전히 녹여내고 나면 한여름 아스팔트에 타이어 고무 탄내가 날 지경으로 고생한 내 영혼에 구멍이 나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오늘도 그 수많은 감정 속에서 잔고가 간당간당한 사랑을 바닥 닥닥 긁어서 보내주느라 남은 게 없어서 몸도 마음도 허기진 지금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잠들고 고요해진 거실에서 크게 한 번 숨을 고르고 나면 남은 뒷정리와 오늘의 미안함이 물밀듯 퍼레이드로 등장한다. 경쟁이라도 하듯, 작은 자동차는 쥐고 있던 작은 손의 온기를 전송하고, 바닥의 색연필 자국은 아이에게 ‘그림은 종이에’ 규칙을 알려줬을 때의 서러운 표정을 소환하며, 벗어놓은 작은 옷가지들에서는 엄마에게 혼나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아이의 얼굴까지 정말 별안간에 밀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설거지를 하며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되돌려본다. 뭐니 뭐니 해도 하이라이트는 가장 서러웠던 모습이지, 하며 다음 대국에서는 반드시 패배하지 않으리라는 결의로 한수 한수 복기한다. 대국이 당장 내일인데 반복되는 패배에 나는 답을 찾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항상 답은 아이의 행위보다 아이의 존재 자체를 바라봐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귀결되지만 왜 그 생각은 그 장면에서 바로 재생되지 않는 것일까.


명쾌한 답을 찾고 싶어서 문제를 반복해서 읽던 순간, 아이에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게 했다. 아이가 화났던 장면을 상기하며 아까 이렇게 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안돼서 울음을 터뜨린 거였구나, 하며 감정 그대로를 인정해 보듯 나를 나 자체로 보게 된 것이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고 이런 걸 싫어하네, 나 요즘 이런 게 하고 싶네 하며, 마치 새로운 사랑이라도 시작한 듯 하나씩 뜯어보기 시작했다.


내일의 아이를 향해 생각해 뒀던 말들을 나를 위해서도 하나씩 품어보게 되었다. 그 말들은 하나씩 생명력을 가지고 알에서 깨어나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모든 것이 괜찮다. 스스로에게 이 말을 해주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방임해 왔는가. 이렇게 아이는 나를 비밀의 정원으로 이끌었다.


그래,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 허락하자 개념이 확장되며 모든 이가 솜털 보송한 아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내 딴의 문제를 벗어난, 본질의 회복이며 세상을 향한 사랑의 복원이었다.


생각에 잠겨 송화가루가 노랗게 내려앉은 창틀을 바라본다. 끊임없이 내 코를 괴롭히지만 오늘만큼은 송화가루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닦지 않은 채로 내버려 두기로 한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괜찮은 밤이다.

자, 이제 마음도 누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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